“스타트업 투자시장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스타트업 초기에 투자하는 투자사들의 대형화로 돈이 일부 유망 스타트업으로 몰리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벤처캐피털(VC) 카카오벤처스의 정신아(사진) 대표는 최근 서울 역삼동 팁스(TIPS)타운에서 열린 고벤처포럼 ‘스타트업 투자유치 전략’ 강연 후 본지와 만나 “경영상 위기 구간인 죽음의 계곡(데스밸리)에 봉착한 스타트업은 자금이 절실해도 투자를 받지 못하는 반면 이제 막 생긴 소수의 스타트업에는 투자사들의 중복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이 같은 미스매칭이 스타트업 초기 투자가 지나치게 많은 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달리 표현하자면 ‘배수관이 터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며 “이에 반해 창업 초기를 지나 데스밸리 구간에 진입한 스타트업들의 경우 투자사들도 주요 출자자(LP)들을 설득하기 어려워 적시 투자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은 제도적·정책적 수단이다. 그는 “경제법칙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라며 “실패 위험이 큰 창업자들을 도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재기지원 펀드를 정부 주도로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12년 창립된 카카오벤처스는 그동안 왓챠·루닛·넵튠 등 초기 스타트업들을 발굴해 성장시켰다. 현재 운용중인 펀드는 6개로 운용자산이 2,000억원에 달하고 투자한 스타트업이 줄잡아 160여곳에 이른다. 정부의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지원 프로그램인 ‘팁스’의 운영사로 2013년 처음 참여한 후 키즈노트·미니스쿨 등도 키웠다.
정 대표는 “투자사는 결국 수익률로 평가받게 되지만 투자 여부를 판단하는 것만큼은 수익률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며 “투자한 기업들이 많이 성공하면 투자사의 수익률은 자연스레 좋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스턴컨설팅 컨설턴트 출신으로 이베이 매니저 등을 거쳐 2013년 카카오에 합류한 그는 지난해 3월 카카오벤처스가 옛 사명 케이큐브벤처스를 개명하면서 대표로 선임됐다. 그가 규정한 카카오벤처스의 비전은 ‘개척자들의 든든한 파트너’다. 투자한 기업들을 패밀리라고 부르는 카카오벤처스는 매달 패밀리데이를 연다. 정 대표는 “투자사와 스타트업은 물론 스타트업들끼리 관계도 중요하다”며 “경영상 애로점에 대해 토로하고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벤처스는 지난해 43개 스타트업에 총 337억원을 투자했다. 증강현실(AR)·블록체인 등 새로운 분야로 투자를 넓히고 있다. 여전히 정보기술(IT)과 소프트웨어 기술기업 투자가 중심이다. 그는 “올해도 많은 벤처투자자금이 시장에 풀려 지난해보다 투자 규모가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