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를 둘러싼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두 회사가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서로 다른 결론을 가진 보고서를 제출했다. 두 회사 모두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내년 최종 판정까지 갈 경우 ITC에서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진 곳은 상당한 치명상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15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각 사가 선임한 전문가가 진행한 보툴리눔 톡신 균주 감정시험을 마무리했다. 메디톡스 측 전문가가 대웅제약의 균주를 분석한 보고서는 지난달 20일, 대웅제약 전문가의 반박 보고서는 이달 11일 제출됐다. ITC는 이달 말 재판을 시작해 내년 6월 예비판결, 10월 최종판결을 내리게 된다.
메디톡스 측 전문가 폴 카임 미국 노던 애리조나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메디톡스의 균주 모두 최근 동일한 조상에서 분화됐다”며 “즉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는 메디톡스의 균주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어 카임 교수는 “두 균주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유전적 변이(SNPs)를 확인했을 때 대웅제약의 균주가 한국 자연환경에서 분화돼 진화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대웅제약가 메디톡스의 균주를 도용해 보툴리눔 톡신 제재를 만들었다고 결론을 낸 것이다.
메디톡스는 “카임 교수가 유전체 분석을 사용해 병원균의 기원과 진화를 추적하는 미생물유전학의 전문가”라며 “9·11 탄저균 테러 당시 미국 정부와 함께 테러에 사용된 균주와 출처를 밝혀낸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웅제약 측 전문가 데이비드 셔먼 박사는 “일부분만 확인하는 메디톡스의 유전자 분석 방법이 적절하지 않으며, 전체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두 균주를 확인했을 때 양 사의 균주가 차이가 있다”며 “매우 안정적이라 변이가 느린 16s rRNA의 염기서열이 다른 만큼 두 균주의 근원이 같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아울러 대웅제약 측은 “메디톡스는 스스로 강조했던 포자 형성 여부도 뒤집었던 만큼 실험 자체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양측이 상반된 논리를 펼치면서 시장의 관심은 내년 6월 발표될 ITC의 판결에 쏠리고 있다. 특히 두 회사는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만큼 판결 이후 패소한 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메디톡스는 자체 개발한 보툴리눔 톡신 제품 ‘뉴로녹스’가 내달 중국 시판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보툴리눔 톡신 원조 ‘보톡스’를 개발한 앨러간에 기술된 ‘이노톡스’는 지난해 10월 미국 임상 3상에 진입했다. 지난 6월 애브비가 앨러간을 인수함에 따라 임상 진행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편 대웅제약은 지난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나보타’의 허가를 받아 5월 ‘주보’라는 제품명으로 보툴리눔 톡신 제제를 정식 출시했다. 아울러 지난 1일에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나보타’의 품목허가 승인을 받으며 내년부터 유럽에도 ‘누시바’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하지만 지난 2016년부터 진행됐던 보툴리눔 톡신 균주의 출처를 둘러싼 공방 결과에 따라 패소한 회사는 모든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에서 판로가 사실상 막히는 것은 물론, 손해배상 등으로 회사의 근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보툴리눔톡신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미국 시장을 놓고 양측이 소송전에 나섰지만 오히려 ‘K바이오’의 신뢰만 갉아먹고 있다”며 “감정싸움이 아닌 실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양측이 합의에 나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