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부처·민간이 靑 눈치보는 신세…기업 야성적 충동 깨워줘야"

[이젠 소통과 민생이다]

<하>조국 사태 이후…경제원로 5人의 고언

잘못된 경제정책은 폐기…시장에 권한 되돌려주고

노조 파업권 남발 등 힘으로 나올땐 강경조치 필요

세금 쓰는 단기알바 대신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을




두 달 동안 국민을 분열과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던 ‘조국 사태’가 일단락되면서 이제는 청와대와 정부가 경제활력 제고에 전력을 기울일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수십 년에 걸쳐 나라의 앞날을 고민하며 정책을 설계하고 학문 연구에 매진했던 경제 원로들은 “각 부처와 민간이 청와대의 눈치만 보는 신세로 전락했다”며 “잔뜩 위축된 기업의 야성적 충동을 일깨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은 또 “경기에 대한 잘못된 진단으로 엉뚱한 처방만 내놓는 대신 정책 방향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면서 저성장 국면을 극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는 16일 “청와대가 모든 정책을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기조에만 끼워 맞추면서 직업 관료의 식견과 경험은 전혀 활용을 못 하고 있다”며 “공무원들이 일할 의욕을 내지 못하는 정부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김 교수는 “최저임금을 무리하게 올리고 법인세까지 인상하면서 기업들의 활력을 꺾어 놓으니 너도나도 투자처를 나라 바깥에서만 찾으려고 하는 것”이라며 “경제 혁신의 주역은 기업이며 정부는 조력자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기업을 험하게 대하면 결국 해외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고 거듭 충고했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도 “정부가 기업을 위한 디딤돌을 놓아준다는 생각을 버리고 걸림돌을 제거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며 “청와대와 정부가 나서서 ‘그랜드 플랜’을 세운다는 것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는 행태”라고 동조했다.


대내외 악재로 나날이 악화하는 엄중한 경제 상황을 명확히 인식하고 정책 궤도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졌다. 전 이사장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0%로 하향 조정하고 한국은행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끌어내린 것은 상황의 위중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위기임을 부정하면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자화자찬하지 말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제대로 표명하는 것이 오히려 시장과 투자자의 불안을 잠재우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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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어 “청와대는 소득주도 성장 방침을 수정하는 것에 대해 일종의 ‘포비아(공포증)’를 가진 듯 보인다”며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난기류를 만나면 즉각 궤도를 수정하는 것이 책임 있고 용기 있는 파일럿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도 “대통령 스스로 이상론에 치우치지 말고 정책 방향을 현실적으로 잡았으면 한다”며 “곳곳에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제 정책들을 지금이라도 폐기하고 상당수의 권한을 시장에 돌려줘야 한다”고 거들었다.

원로들은 친(親)노조 성향으로 일관하는 정부의 노동 정책에 대해서도 냉철한 비판을 가했다. 조 전 부총리는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등 대부분이 노조를 위한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성해주는 정책”이라며 “노조에 가입도 못 하는 영세 사업장의 근로자들을 보듬어야 하는데 이미 과도한 혜택을 누리는 대기업·공공기관의 정규직 노조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핵심 지지층의 표심에 휘둘리지 말고 노조가 파업권을 남발하면서 힘으로 나올 때는 그에 상응하는 강경조치를 취하는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지하철 노조가 경제가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단체행동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청와대와 정부는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과 임금체계 개편 등 강력한 노동 개혁을 통해 경직된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정부의 일자리 창출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은 “취임 첫날 문 대통령이 하신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반문한 뒤 “청와대에 상황판을 걸면서 ‘일자리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하지 않았느냐”고 상기시켰다. 박 회장은 “그럼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어야지…”라며 “세금을 쏟아붓는 ‘단기 아르바이트’는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를 못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복지 혜택을 주는 것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돈 쓰는 일자리 대신 돈 버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가 올바른 고용 창출의 초점을 못 맞추고 있다”며 “이제는 제발 초심으로 돌아가서 공약집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혁신 성장에 전력을 기울여주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세종=나윤석·한재영·백주연기자 nagija@sedaily.com

나윤석·백주연·한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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