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공감] 마녀와 악당의 나라에서

‘나는 이제 선과 악의 구분을, 명확한 정의와 분명한 진실을 믿지 않는다. 나는 단색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이분법을, 칼날처럼 날카로운 비판과 명쾌한 아포리즘(aphorism)을 믿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를 완벽한 악인으로 만드는 모든 구호들을 경계한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내면에 이 우주의 별들만큼이나 많은 얼굴들을 숨기고 있었으므로 나는 사람에게 들이댈 수 있는 리트머스종이가 있다고 믿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이 우주만큼 복잡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복잡했고 내가 만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신비로울 것이다.’(김언수, ‘설계자들’, 2010년 문학동네 펴냄)

공감



작가 김언수는 세계 스릴러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야기꾼이다. 그의 장편소설 ‘설계자들’은 세계 24개국에 수출됐고, 미국 펭귄랜덤하우스의 자회사 더블데이는 이 소설에 억대의 판권료를 지불했다. 김언수의 소설은 어쩔 수 없이 내몰린 자들, 이렇게 살 수밖에 없는 자들의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멋들어진 영웅도, 죽어 마땅한 악당도 없이, 그는 인간들의 작고 복잡하고 신비로운 사연들을 쌓아올려 압도적인 우주를 건축해낸다.


반면 최근 한국의 현실은 마치 망한 스릴러 같다. 그저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고 싶었던 한 여성 연예인에게 얼굴과 이름을 가린 졸개들이 말로 칼을 날려가며 저들끼리 낄낄거렸다. 나라는 양쪽으로 쪼개져 서로 내가 정의라며, 상대편은 싹 다 이 땅에서 사라져야 마땅한 악당으로 몰아갔다. 이분법으로 점철된 한국이라는 현실 스릴러의 결말은 지독하고 끔찍했다. 오직 나만 정의이고 누군가는 완벽한 악당이나 마녀처럼 느껴질 때, 그것은 대개 내 머릿속에서 잘못 세팅된 소설일 확률이 높다. 명확한 정의와 진실을, 이분법을, 한 사람을 완벽한 악인으로 만드는 모든 구호를 믿지 않는다는 김 작가의 말은 비단 소설작법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서의 예의와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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