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년 전쯤. 젊은 왕 고종은 태극기를 전국에 반포해 국기로 하고 삼청동에 기기창을 설치했다.
일본처럼 서양의 것을 배우고 교류하는 것이 시대적 과제로 여겨지던 그 시절. 파란 눈의 외국인은 우리가 쓰던 물건들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가 쓰던 그릇이며 옷·모자·필기구, 심지어 성냥까지 종류를 가리지 않는 듯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하찮았던 것들. 그러나 그중에는 이제 세계 어디서도 보기 힘든 우리의 것이 있었다. 물론, 기록의 민족인 우리의 옛 책들에는 남아 있다.
1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새로운 것’과 ‘옛것에 대한 무관심’에 이 땅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지구 반대편 독일 땅에서 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도 인광노(引光奴) 여섯 묶음은 살아남았다. 대한제국 비운의 관리 목인덕(穆麟德, Paul George von Mollendorf)의 수집품이다. 개인적인 수집이 아닌 당시 독일 박물관의 지침에 의한 체계적 수집이었고 목인덕은 이를 착실히 수행해 네 차례에 걸쳐 목록과 함께 본국에 보냈다. 그들이 우리보다 앞섰던 것은 유물 수집과 관리에 대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민족을 보는 눈이 아니었을까 한다. 차별의 눈을 가졌더라면 당시 첨단 문명을 누리던 그들에게 하찮게 보였을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차이의 눈으로 본 한국의 세세한 물건들이 고스란히 목인덕에게 수집돼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 민속박물관에 잘 보존돼 있다.
/오춘영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