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김형철의 철학경영] 그래도 양치기는 계속 소리쳐야 한다.

<109> 리더가 신뢰를 얻는 방법

조직이 위기라면 가감없이 알리고

시스템·매뉴얼 등 재정비 해야

신뢰는 말 아닌 행동으로 얻어져

목숨도 내놓을 수 있는 결기 필요

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김형철 전 연세대 교수




1915A27 철학


“늑대다! 빨리 좀 와주세요! 양들이 다 죽게 생겼어요!” 다급하게 외치는 양치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로만 들어보면 정말 늑대가 나타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산 밑에서 밭일하는 사람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가서 물어본다. “저렇게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왜 아무도 안 움직이나요.” “여보쇼. 저러는 게 벌써 세 번째요. 당신 같으면 힘들어 죽겠는데 가겠소.” 여기서 양치기는 누구일까. 수위? 경비원? 말단 직원? 천만의 말씀. 양치기는 나라가 됐든 회사가 됐든 그 조직의 기관장이다. 리더는 자신이 감지한 위기를 조직원들에게 최우선적 어젠다로 세팅하는 권력과 의무를 가진 존재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는 양치기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 극복하기 힘든 감정의 골이 파이고 말았다. 서로가 분열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히 책임의 80%는 리더인 양치기에게 있다.

예고된 문제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기회다. 인구절벽이 온다고 한다. 아니 이미 왔다고도 한다. 만약 돌이킬 수 없는 트렌드라면 더 이상 인구 타령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다. 줄어든 인구로 살아가는 현명한 정책을 동시에 수립해야 한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많은 자동차부품 회사들이 사라질 것이다. 이것도 예고된 문제다. 그렇다면 이것도 기회다. 그런데 진짜 위험한 기회일수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양치기는 소리쳐야 한다. 아니 더 소리를 더 높여야 한다.

양치기가 마을 사람들을 분열시켜놓은 것은 거짓말로 “늑대다”를 외쳐서다. 이유가 무엇일까. 자기는 산 위에서 힘들게 양들을 돌보고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산 밑에서 오손도손 재미있는 게 얄미웠던 걸까. 아니면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반대로 등산을 시키려고 또는 산 위의 멋진 경치를 구경시키려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거짓말은 안 된다. 늑대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서라면 그 사실을 정직하게 알려야 한다. 그리고 늑대경보훈련 시스템과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 낫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분열을 조장하고 불신을 낳았다.


파블로프의 유명한 개 실험이 있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을 친다. 그러면 개는 먹이를 주지 않더라도 종소리만 들으면 입에서 침을 흘린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일시적이다. 종소리와 먹이가 연관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더 이상 종소리를 들어도 침을 흘리지 않는다. 긍정적 조건반사는 일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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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전기그릴 위에 올려놓는다. 깜짝 놀라 도망간다. 종을 치면서 전기그릴로 데려간다. 물론 억지로 끌고 가야 한다. 아니면 도망갈 것이 분명하니까. 계속 반복하면 이제 종소리만 들어도 치를 떨면서 도망간다. 그런데 이 부정적 조건반사는 그 효력이 영구히 간다. 더 이상 전기그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길이 없어서다. 도망가기 바쁜데 뭘 확인하겠는가. 한 번 불신이 심어지면 오래가는 이유다.

옛날에 한 나라가 있었다. 오로지 국왕만이 전쟁을 선포할 수 있었다. 신기한 것은 그 전쟁에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전한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다. 국민 모두가 국왕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 나라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전쟁에 국민 전원이 참여할까. 자세히 보니 출정하는 군대의 제일 앞줄에 국왕이 있다. 전투 내내 제일 앞에서 싸운다. 전쟁이 끝났을 때 국왕이 살아남은 경우는 없다. 여기에도 예외가 없다. 지도자에 대한 신뢰는 그냥 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남의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려면 자기 목숨부터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자연상태에서 국가로 이행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다.

양치기가 마을 사람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갈 것이다. 혼자서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은 당분간 산 위까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신뢰를 상실한 리더가 이끄는 사회와 조직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양치기도 마을 사람도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 양치기는 계속 소리쳐야 한다. 왜. 늑대로부터 양을 살려야 하니까.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정직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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