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단계 합의를 이룬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중국과의 협상이 잘되고 있다”며 “2단계 협상은 여러 면에서 1단계보다 해결이 훨씬 더 쉬울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면 중국은 협상에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데 목표를 두면서 장기전까지 배제하지 않고 있다. 미국 주요 기업들은 무역전쟁 장기화 가능성을 고려해 공급망 다변화 같은 대비책을 준비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미 경제방송 CN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중국이 농산물 구매를 시작했는데 나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농산물 구매는 미국 정부가 중국의 협상 의지를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다. 지난 11일 양국이 1단계 ‘미니딜’에 합의하면서 중국은 미국산 농산물을 최대 500억달러어치 구매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래리 커들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폭스비즈니스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중국과 이번주에 전화로 계속 협의할 것인데 (협상 상황이) 꽤 좋아 보인다”며 “양측 간 협상이 잘 진행된다면 오는 12월에 부과할 예정인 대중 관세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 낙관적 분위기를 전했다. 러위청 중국 외교부 부부장도 “무역협상에서 진전을 이뤘다”며 “서로 존중하면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했다.
백악관과 상무부에 따르면 미 정부는 미중 협상을 3단계로 구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1단계는 농산물 구매, 환율협정, 금융시장 개방 등이며 △2단계는 기술이전 강요 금지, 지식재산권 보호, 시장접근 시 공정성 확보 △3단계는 이행강제 방안 등이다. 이 가운데 2단계는 산업과 통상정책이 포함돼 중국 정부가 합의를 꺼리는 부분이다.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이 “1단계 합의보다 2·3단계 합의가 미국에 진짜 알맹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달 칠레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1단계에 서명한 뒤 추가로 단계별 합의를 이룰 것으로 호언장담하지만 중국은 시간 끌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치 로 BNP파리바에셋매니지먼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무역전쟁을 질질 끌기를 원한다”며 “일시적 합의는 다음 대화를 위한 수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리커창 총리를 비롯한 중국 핵심 인사들이 겉으로는 미중 협력과 협상 진전을 거론하지만 내심 내년 미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미국의 추가 관세부과만 미루거나 피하면서 합의를 최대한 늦추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과의 태양광 제품 분쟁을 이유로 세계무역기구(WTO)에 24억달러 규모의 보복조치 승인을 요청한 것도 새 변수다.
1단계 합의 서명 여부를 아직 확신하기에 이르다는 해석도 있다. 이날 로스 장관은 “반드시 11월일 필요가 없으며 적절한 합의 후 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해 일정이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 기업들도 장기전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는 220개 미국 기업을 대표하는 미중비즈니스협의회의 제이컵 파커 중국 담당 부대표는 “기업들과 만나 얘기해보면 중국과의 관계는 앞으로 갈등이 훨씬 더 큰 궤도를 가게 될 것”이라며 “가까운 장래에 이 같은 방향이 바뀔 것 같지는 않다”고 우려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기업들이 중국과의 갈등 관계가 길어질 것으로 보고 중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공급망을 다변화하기 시작했다”며 “다른 곳에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는 3~5년이 걸린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