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바둑기사 이세돌을 꺾은 지 3년. AI는 이제 실생활로 들어와 기업의 채용과정에 접목되기 시작했다. 취업 응시자가 사람이 아닌 AI면접관에게 자기소개를 하고 능력과 인성을 심사받는 시대가 현실화된 것이다. 기업들이 이른바 스펙 허물기 차원에서 입사 지원자들에게 학력·출신지 등을 묻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방식을 도입하면서 해당 채용전형 절차의 일환으로 ‘AI역량검사’라 명명된 AI면접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AI면접 솔루션을 개발한 국내 업체는 정보기술(IT) 기업 마이다스아이티가 유일하다. 이에 따라 국내 제약사에서부터 금융사, 군 당국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마이다스아이티가 AI면접 서비스를 대행해주고 있다.
AI면접 기술이 어디까지 진화했는지 체험하기 위해 본지 기자가 일일 채용면접 응시자로 나섰다. 응시자가 개인용컴퓨터(PC) 등으로 마이다스아이티 솔루션에 접속하면 집에서도 원격 면접을 볼 수 있지만 기자는 직접 마이다스아이티 본사를 찾아갔다. 지난 17일 이 회사의 경기도 성남시 판교 본사를 찾은 기자는 사람이 없는 빈방으로 안내받았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 화면을 켜자 AI면접 솔루션 화면이 켜졌다. 스피커로 AI가 음성질문 등을 던지면 응시자는 마이크로 음성답변하거나 컴퓨터의 키보드나 마우스로 답변을 입력하는 방식이었다.
면접은 자기소개를 하는 순서에서부터 시작됐다. 각 질문에 대해 30초의 준비시간과 90초의 답변시간이 주어졌다. 기자는 본인의 장점과 약점, 지원동기, 간략한 이력 등을 음성으로 답변했다. 이어 AI는 예상치 못한 심층적인 질문을 던졌다. ‘입사동기가 회사와 맞지 않아 고민을 이어갈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기자는 일순 긴장했다가 “누구나 직장이 자신과 맞을 수도 있고 안 맞을 수도 있는데 후자라면 회사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조언하겠다”고 답변했다. 다음 순서로 흔히 ‘인성검사’라고 부르는 객관식 성향 평가와 간단한 사고력 게임이 진행됐다.
면접과정에서 AI는 기자의 습관적인 얼굴 근육 68개의 움직임, 목소리의 톤 등을 통해 자신감 등을 확인했다. 마이다스아이티의 한 관계자는 “사고력 게임에 대해서는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여러 번 봐도 점수가 거의 바뀌지 않는다”며 “출제문제 유형이 구직자들 사이에서 돌아도 정확한 평가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표정 역시 의식적으로 연기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무의식적인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AI가 포착해 분석한다. AI면접관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회사가 원하는 유형의 사람과 비교해 추천·비추천 등의 결과를 도출해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활발하고 적극적인 태도가 중요한 영업 직군에서는 사교성을 중요하게 살펴보고 안정적인 의사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공기관에서는 모험성 대신 안전성을 선호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응시자가 면접 연습을 많이 해도 평가점수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분석의 초점이 정답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원자가 상황을 해결하는 무의식적 패턴에 있기 때문이다. 마이다스아이티 관계자는 “정답이 분명한 게 아니라 지원자의 표정과 목소리 톤, 대처방식, 성향 등을 판단하기 때문에 연습과 큰 관련이 없다”며 “실제 사내 솔루션을 개발한 직원이 테스트 삼아 반복해서 면접을 봤는데 계속해서 ‘조직부적합’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AI는 고성과예측점수를 바탕으로 ‘추천(A)’ ‘보통(B)’ ‘비추천(C)’ ‘조직부적합(D)’으로 지원자를 판단한다. 기자는 고성과예측점수에서 B+, 전체 평균점수에서 A를 받았는데 이 정도면 면접을 통과하는 데는 충분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다만 마이크를 사용하는 만큼 평소 통화하듯 작은 목소리로 답변했는데 이 때문인지 매력도와 신뢰도 분야에서 좋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실제 면접에 임하듯 또렷하게 발성하는 게 중요하다. 결과지에는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에게 이후 전형에서 해볼 만한 질문들도 함께 담겨 있다.
AI면접은 지난해 처음 개발돼 올해 본격적으로 기업 채용에 적용됐다. 블라인드 등 서류면접의 변별력이 낮아지는 상황 속에서 인사 담당자들의 호평이 잇따르고 있다. 이 때문에 익숙하지 않은 구직자들 사이에서 ‘미소를 지어야 한다’ ‘착한 답을 골라야 한다’ 등의 검증되지 않은 팁이 유튜브에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인위적으로 ‘착한 답변’만 선택할 경우 함정 질문에 걸려 신뢰할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만큼 솔직한 답변이 중요하다. 신뢰불가 판정은 두 명 이상의 목소리나 얼굴이 인식될 때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다만 모든 과정은 녹화돼 채용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만큼 실제 면접을 보는 것처럼 단정한 복장과 성실한 자세로 면접에 임해야 한다.
저장된 지원서와 영상 등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아마존 웹서비스(AWS) 기반 암호화 작업을 거치고 있으며 채용 종료 5일 이내 모든 데이터를 삭제하고 각 기업의 인사 담당자에게 확인받는다. 컴퓨터 노후화, 네트워크 불안정성 등 컴퓨터 환경에 따라 면접 사이트가 꺼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를 대비해 재응시 기회를 제공하고 헬프데스크·카카오플러스·챗봇을 운영하고 있다.
구직자들의 평은 엇갈린다. 실제 면접관 앞에서 보는 면접이 아닌 만큼 긴장감이 완화됐다고 호평하고 소위 ‘스펙’으로 사람을 뽑던 서류전형보다 낫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AI가 사람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었다. 최근 한 제약사 영업 직군에 응시했다는 구직자 A씨는 “AI면접이 아니었으면 서류전형에서 떨어졌을 것 같다”면서도 “사람이 아닌 AI가 나를 평가한다는 점이 약간 자존심 상했고 면접 도중에 컴퓨터에서 오류가 나 답답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