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오만가지 슬픔 가운데서도 극한으로 꼽히는 것이 참척(慘慽)의 고통이다. 박완서 작가는 아들의 죽음 이후 통곡하고 기진하기를 거듭하다, 흰 종이에 검은 피를 토해내듯이 이 글을 썼다. 이토록 가혹한 고통의 의미는 무엇인가. 애초에 인간을 보우하는 신이란 과연 있기나 한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빼앗기고도 구차하게 계속 살아야만 하는가. 가슴을 쥐어뜯는 처절한 질문 끝에 칩거한 수도원에서 그는 한 수녀의 이야기를 듣고 ‘왜 하필 내가’ ‘왜 이런 천벌이 나에게만’의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다. ‘왜 나라고 이런 고통을 겪으면 안 되는가’ ‘내가 뭐관대’라고 묻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고통과 불행이 나를 유독 미워하는 신이나 운명의 치밀한 음모가 아니라,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간의 아픔임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다시 일어나 살아갈 수 있다. 슬픔과 불행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쳐들어온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불행을 겪은 후의 내 삶을 ‘하필 이런 꼴’로 만들지는 않겠다는 결단이고 다짐일 뿐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