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의 또 다른 이름은 ‘비원’이다. 일제강점기 때 궁궐을 낮춰 부른 것으로 잘못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대한제국 때부터 그리 불렸다. 문화재청 재직 시절 창덕궁관리소장을 역임한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신간 ‘창덕궁, 왕의 마음을 훔치다’에서 고종 때인 1903년 창덕궁 궁원의 관리기구로 비원(秘院)을 뒀는데, 이듬해에 그 명칭을 ‘비밀스러운 정원’이라는 의미의 비원(秘苑)으로 바꿨다고 설명한다. 비원이라 불리는 30만㎡의 창덕궁 후원은 아시아의 3대 정원으로 꼽히며 수령 300년 이상의 수목 70수를 포함해 16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창덕궁은 지난 1997년 우리나라 궁궐 가운데 유일하게, 맨 처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책은 창덕궁의 역사와 함께 공간 곳곳을 누비며 숨은 얘기, 복원과 활용의 묘수를 전한다.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 앞의 율곡로는 종로구 중학동 동십자각에서 혜화동을 지나 동대문에 이르는 3㎞의 도로다. 일제가 1931년에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덕궁과 종묘로 이어지는 맥을 끊기 위해 그 가운데로 길을 내면서 만들어졌다. 이후 1966년 서울시 주요 도로에 새 이름을 붙이면서 이 길이 지나는 관훈동 쪽에 율곡 이이가 살았다는 점을 강조해 율곡로라 칭했다. 일제는 창덕궁에서 종묘로 넘어다니는 콘크리트 육교를 율곡로 위에 건설했다. 최근에야 창덕궁과 종묘 연결을 위한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다. 저자는 “언젠가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날이 올 것”이라며 기대를 드러냈다. 2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