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더 이상 중소기업에 돈을 주는 정책을 말아야 합니다. 이런 돈은 마약과 같습니다. 기업들은 돈을 주면 정책 서비스로 느끼지 않습니다.”
지난 24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장에서 열린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의 첫 포럼장. 주제 발표 후 종합토론에서 30년간 중소기업과 대기업 정책을 연구한 조영삼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이처럼 중소기업 정책에 대해 다소 과격한 언사를 쓰면서 강도높게 비판을 했다.
하지만 이 발언에 대해 청중이 동요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그동안 중소기업 정책이 퍼주기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좀비기업을 늘리고 정작 기술력있는 기업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중소기업 정책의 딜레마를 관통한 발언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학회는 중소벤처기업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촉구했다. 학회에는 국내 내로라하는 중소기업 전문가와 고위 공직자 출신인들이 대거 모였다. 이들은 대기업 낙수효과에 기댄 경제구조와 중소기업을 약자, 지원 대상으로만 여긴 근시안적 정책 접근에 대한 한계를 지적했다. 한정화 전 중소기업청장(현 중소벤처기업부) 겸 학회장은 주제 발표에서 “중소기업 문제는 한국형 자본주의 체제와 성장모델의 위기에서 해석해야 한다”며 “재벌권력과 노동권력의 암묵적인 담합이 문제”라고 말했다. 더 이상 대기업 성장이 중소기업 생존을 담보하지 않고, 노조가 재벌의 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토론에서 조영삼 부원장도 “중소기업 문제를 보면 70%는 대기업 중심 성장체제에서, 30%는 중소기업 내부에 있다”며 “중소기업 정책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이 전제조건을 고민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이어 조 부원장은 “돈을 주면 기업이 정책서비스로 느끼지 못한다”며 “돈 중심에서 시장 형성으로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실제 지원기관이 느끼는 현장의 이야기다. 객석에 있던 이성희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글로벌본부장은 “중소기업이 어떤 지원을 원하는지 늘 살펴보고 있지만, 기업과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며 “저희가 패키지로 지원하려고 해도 중소기업은 ‘자금만 달라’고 한다”고 답답해했다.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혁신성장연구본부장은 “2007년 5.5조원이던 중기부 예산은 지난해 10조원으로 두 배 늘었다”며 “중기부는 출범 초기 ‘중기고용부’처럼 움직였는데, 이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정책이 사회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구분하지 못하고 혼재돼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표적인 게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다. 중소기업은 이런 환경 규제가 경영난을 가중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정희 전 중소기업학회장은 “중소기업 문제는 늘 규제 문제”라며 “하지만 화평법, 화관법은 사회적 규제인데, 중소기업들은 중기부에 이 규제를 해결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화평법, 화관법은 중기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 사회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은 ‘전 공직자’가 맡았다. 한정화 전 청장은 “중소기업 정책은 가지 수가 많은데 임팩트가 없다”며 “기획재정부가 신규 사업에 대해 예산을 잘 주고, 기존 사업에 대해 예산을 잘 안 준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한 전 청장은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파워엘리트가 중소기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거 정부 고위 정책 담당자는 ‘중소기업은 정부에 요구만 한다’는 식으로 발언해 저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토론 사회를 맡은 임채운 전 중진공 이사장도 “중소기업 정책은 프로세스가 문제”라며 “돌출적이고, 즉흥적인데다 집행도 밀어내기 식으로 이뤄지며 평가도 단편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