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복지분야 의무지출 매년 8.9% 급증..저소득층 겨냥 선별복지로 바꿔야

■ 고장난 정책 궤도수정 용단 내려야-한계 다다른 확장적 재정

현금성 복지 늘려 국가자원 낭비

부양 효과 없고 건전성만 악화

반도체만 바라보는 정부도 문제

민간투자 살려 '승수효과' 유도를

2815A05 현금성복지



정부는 경기부양을 명분으로 2년 연속 9%대의 확장적 재정을 편성하고 올해까지 5년째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했다. 또 올 4·4분기 중앙재정뿐 아니라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에서 불가피한 이월·불용을 제외한 가용 예산을 전액 집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2일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재정이 대외 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와 같이 2% 성장률을 사수하기 위해 재정지출에 총력전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활력을 띠지 못하는 투자·소비·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를 보면 확장재정만을 고집하는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늘어난 예산이 복지 부문에 치중돼 있다 보니 재정을 통한 부양 효과는 크지 않다. 전문가들은 부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 복지 대신 저소득층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선별적 복지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도 의무지출 규모는 255조6,000억원으로 2020년도 전체 예산안의 49.8%를 차지하나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률 개정을 통해 의무지출로 전환될 사업을 포함하면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법안 통과가 되지 않은 사업들은 내년 의무지출에 반영되지 않았는데 농림축산식품부의 공익형 직불제와 고용노동부의 국민취업지원제도가 대표적이다.


복지예산같이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힘든 의무지출 비중이 커지면 예산을 탄력적으로 쓰기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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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올해보다 12.8% 증가한 181조6,000억원으로 전체 정부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4%에 달한다. 올해 11조5,000억원을 들였던 기초연금 국비가 13조1,765억원으로 확대되는 등 보건복지부 예산 중 앉은 자리에서 대상 확대에 따라 규모가 커지는 금액만 7조원 수준이다. 복지 분야 의무지출은 연 평균 8.9% 상승해 오는 2023년 15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실업급여 예산은 올해보다 32.5% 급증한 9조5,158억원이며 한국형 실업부조인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설하면서 2,771억원을 책정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개방된 나라에서 재정으로 경제를 살리기는 매우 어렵다”면서 “설사 재정 정책을 활용하더라도 생산성을 올리고 경쟁력을 향상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췄으면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될 텐데 지금은 현금성 복지 지출만 늘리고 있으니 효과도 없이 국가 자원을 낭비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경제활력 효과는 크지 않은데 의무지출 규모가 확대되면서 중장기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0 예산안 총괄분석 보고서’를 통해 “일시적인 재정 확대를 넘어 중기 재정운용 목표까지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정처는 성장률 하락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나라살림 지표로 평가되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023년 -94조원으로, 같은 해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8.2%로 악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를 넘은 적은 1998년, 1999년, 2009년 등 경제위기를 겪었던 세 차례뿐이다. 전문가들은 재정 건전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단기 부양책을 쓰는 데 부정적인 입장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면 민간 투자도 늘어야 ‘승수 효과’가 나타나는데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단기적으로 예산을 투자해봤자 효과를 보지 못한다”면서 “예산을 안 들이는 부양책에 초점을 맞추고 분양가 상한제를 비롯한 건축 및 금융 규제를 함께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외여건 탓만 하고 반도체 시장 회복만 바라보는 정부의 시각도 문제로 꼽힌다. 청와대와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성장률을 2.6%에서 2.0%로 하향 조정하고 3·4분기 성장률이 0.4% 쇼크로 나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매번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고집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하반기 반도체 수요가 회복되면 수출도 회복될 것”이라고 밝혔으나 1년 내내 수출 마이너스는 기정사실화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재정은 계속 증가시킬 수 없고 일정 수준 이상 연속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데 제한이 있어 민간의 소비·투자와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며 “현재 재정이 사용되는 부분은 사실상 복지 성격이 강해 성장잠재력 확충에 크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황정원·나윤석기자 garden@sedaily.com

황정원·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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