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뮌스터 같은 도시가 있다. 안양이다. 경기도 안양은 지난 2005년부터 국내 유일의 트리엔날레로 3년에 한 번씩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APAP)’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지난 17일 ‘공생도시’를 주제로 개막해 옛 안양유원지인 안양예술공원을 중심으로 국내외 47팀 작가의 100여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김윤섭 감독이 이끄는 이번 APAP는 파라다이스, 하모니, 투모로우의 소주제로 인간과 자연, 예술과 일상의 공존을 구현하며 오는 12월15일까지 열린다.
APAP의 상징은 안양예술공원을 내려다보며 선 ‘안양 파빌리온’이다. 첫 회 행사에 참가한 포르투갈 건축가 알바로 시자 비에이라의 작품인데, 어느 각도에서도 같은 형태로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가 아시아 최초로 설계한 건축물이라 영구히 이곳에 남았다. 안양 파빌리온의 둥근 지붕을, 그 곡률 그대로 내리그은 자리에 새 작품이 들어섰다. 올해 APAP의 참여작가인 조각가 문주의 ‘지상의 낙원’이다.
은백색의 가로 15m 크기 작품은 멀리서 아주 커다란 조개껍질처럼 보이기도 한다. 르네상스의 거장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의 탄생’에 등장하는 조가비처럼 우아하면서도 따뜻한 기운을 내뿜는다. ‘조각은 육중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 투명한 빛이 작품 아래로 쏟아져 내린다.
문 작가는 “대학생 때 안양 연불암에 두어 달 머무르며 책만 읽던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이번 작업 의뢰로 수십 년 만에 다시 온 안양은 전혀 새로웠다”면서 “안양 시내 어디든 작업해도 좋다고 해서 여름방학 내내 틈나는 대로 다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곳이라는 느낌에 어울리는 작품을 구상했다”고 밝혔다. 그는 “도시의 느낌과 극락정토를 지향하는 안양의 지명이 딱 맞아 떨어져 제목을 정했고, 도시의 여유 있고 안락한 품을 곡선의 형태로 나타내기에 이르렀다”면서 “안양파빌리온 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을 그대로 연결해 작품이 되게 했다”고 설명했다. 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지나던 관람객·등산객 누구나 앉아 쉬고 놀 수 있는 쉼터를 의도했다고 문 작가는 부연했다.
묘미는 작품 전체에 투각으로 새긴 안양의 지도다. 땅의 형상을 하늘에 띄운 격인데 안양의 공간과 변천사를 함축한 지도가 마치 별자리처럼 펼쳐진다. 한낮에는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로도 지도를 볼 수 있다. 작품 하나가 주변의 빛·땅·하늘·바람 등 자연요소들까지 품 안에 끌어안았다.
서울대와 뉴욕공과대학 등에서 수학한 문주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때 백남준이 기획한 ‘인포아트(Info Art)’등 굵직한 전시에 참여했고 김세중 청년조각상, 토탈미술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해에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 상징조형물로 ‘하나 된 우리’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문 작가는 “전시를 통해 선보일 작품의 경우 예술가로서의 내 주관에 몰두할 수 있지만 공공미술이라면 지역적 측면, 이를 바라보는 주민의 시선과 감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면서 “따라서 공공미술 작품은 작가 개인의 생각을 강조하고 강요하기보다는 열린 자세로 ‘나눔’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이 알바로 시자의 파빌리온과 연동되게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지상의 낙원’은 영구 설치작품으로 남을 예정이다.
이 외에도 착시를 이용해 멀리서 작품 속 ‘삶’이란 글자가 보이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루스의 ‘안양2019’, 방치된 공간을 새로운 공간으로 거듭나게 한 천대광의 ‘너의 거실’,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도넛 모양 둥근 탁구대로 더불어 사는 삶을 보여주는 싱가포르 작가 리웬의 ‘핑퐁 고-라운드’ 등 도시 곳곳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그간 APAP를 통해 영구 설치작품은 안양 시내에 자리 잡은 야요이 쿠사마의 ‘안양 위드 러브’, 이승택의 ‘용의 꼬리’ 등 86점이 있다.
·사진제공=안양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