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경기악화 국면 속에서도 투자 규모를 유지하며 ‘초격차’ 전략에 힘을 준다. 전체 영업이익에서 반도체 이익 기여분이 1년 사이 39%로 반 토막 났지만 반도체 이익 상승 없이는 실적 ‘턴어라운드’가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국정농단 재판 관련 경영 불확실성 및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위기국면 와중에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삼성전자의 공격적 경영 행보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전자는 31일 진행된 3·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올해 투자액은 29조원으로 전년과 유사한 수준이며 사업별로는 반도체 23조3,000억원, 디스플레이 2조9,000억원 수준”이라며 “4·4분기 시설투자액 상당 부분은 메모리 인프라 관련 부문에 집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연초부터 올 3·4분기까지 집행한 누적 투자액이 16조8,000억원이라는 점에서 올 4·4분기에만 12조2,000억원을 투자하는 셈이다.
올 3·4분기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이 2016년 2·4분기 이후 최저인 3조500억원을 기록하고 영업이익률도 3년 만에 10%대로 내려앉은 상황에서 되레 공격적인 투자 안을 꺼내 들어 의외라는 반응도 나온다. D램 재고량이 아직 정상치보다 많고 10월 D램(DDR4 8Gb 기준) 가격도 전월 대비 4.42% 하락한 2.81달러를 기록해 투자 규모를 보수적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000660)가 최근 13분기 만에 가장 저조한 실적을 발표하며 “내년 D램과 낸드플래시 생산량이 모두 올해보다 감소하고 투자도 올해보다 상당 수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힌 것과도 대조를 이룬다.
이날 삼성전자 측의 발언을 살펴보면 향후 반도체 기술력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격적 투자 집행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측은 “10나노급 D램 비중이 연말 70% 후반에서 80%에 이를 것이며 내년 상반기부터 1y나노가 주류가 될 것”이라며 “1z나노는 계획대로 양산 중이며 극자외선(EUV) 장비를 도입해 고객사 상황을 보며 안정적으로 생산량 증가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 시안2공장을 올해 말 완공해 내년 초부터 가동하고 평택2공장도 내년에 가동해 ‘규모의 경제’까지 갖춘다는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공장에서는 낸드플래시를, 평택2공장에서는 D램을 양산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애플 등이 5세대(5G) 스마트폰을 내놓고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5G 서비스가 본격화돼 반도체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강호 대신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시안과 평택 공장을 내년에 가동한다고 밝힌 것은 내년 메모리반도체 수요가 그만큼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올 4·4분기에는 반도체 실적이 떨어지겠지만 결국 내년 삼성전자의 실적을 이끌어갈 것은 반도체”라고 전망했다.
내년 하반기 인텔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아이스레이크’가 출시될 경우 지난 몇 년간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이끌었던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D램 및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도 급증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성순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은 원가율이 좋기 때문에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어느 정도 감내할 수 있는 구조”라며 “현재 D램 재고량도 향후 서버 수요만 회복된다면 대부분 소진할 수 있다고 보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이날 “중장기 수요를 위한 투자는 적극적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혀 내년에는 시스템반도체를 중심으로 투자를 늘릴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올 3·4분기 실적발표 직후 투자액을 기존 대비 50% 늘린 150억달러로 상향하겠다고 밝히는 등 경쟁사들의 공격적 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전 세계 파운드리 사업자 중 EUV 노광장비를 활용한 7나노 이하 미세공정은 삼성전자와 TSMC만 도입 중이어서 오는 2030년 파운드리 시장 1위 달성을 위해서는 투자 확대가 절실하다. 삼성전자의 3·4분기 현금성 자산은 직전 분기(99조3,070억원) 대비 소폭 늘어난 104조9,892억원으로 여력도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또 퀀텀닷(QD) 디스플레이에 향후 6년간 13조1,000억원을 투자해 대형 첨단 디스플레이 시장으로도 보폭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측은 “아산 8.5세대 액정표시장치(LCD) 생산라인을 QD 디스플레이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중소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기존 사업이 QD 디스플레이 시장 확대 전까지 얼마만큼 ‘캐시카우’ 역할을 해줄지가 관건이다.
올 3·4분기 깜짝 실적을 보여줬던 스마트폰 등 IM(IT·모바일) 부문은 위아래로 접히는 ‘클램셸’ 폴더블폰과 5G 스마트폰 공략 확대로 흐름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중저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숨통이 트인 만큼 원가절감을 통한 관련 수익 확보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측은 이를 위해 스마트폰 제조자개발생산(ODM)과 합작개발생산(JDM)에 힘을 주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이와 관련해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고 라인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일부 제한된 모델에 한해 JDM을 시행하고 있으며 협력업체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가전 부문은 QLED·8K·초대형 TV 판매 확대 등을 통해 수익성을 끌어올리고 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등의 제품으로 초고가 시장도 공략할 계획이다.
/양철민·권경원·변수연기자 chop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