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글로벌 WHO] 글로벌 '인싸' 정치력, 강한 ECB 재건할까

재정 정책 등 ECB 분열 위기 속

존재감 화려한 신임 총재 등장

강력한 인맥·화법·추진력 바탕

회원국 정상 만나 외교전 전망

프랑스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

유럽금융 女 진출도 늘어날 듯




크리스틴 라가르드(63)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유로존 통화정책의 수장인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로 1일 취임했다. 이번 취임으로 라가르드 총재는 그동안의 수많은 ‘여성 최초’ 타이틀에 ‘ECB 최초 여성 수장’까지 더하게 됐다. 그는 글로벌 로펌인 ‘베이커앤드맥킨지’의 첫 여성 회장을 시작으로 주요8개국(G8) 최초 여성 장관, IMF 최초 여성 총재 등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ECB 총재 자리에 오른 라가르드의 정치적 리더십에 주목한다. 그동안 유럽 재정위기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ECB 총재로서 금융 리스크 대응 능력은 이미 충분히 검증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중앙은행 경험이 없는데다 정통 경제학자도 아닌 그가 무역갈등과 경기둔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등 유럽연합(EU) 앞에 산적한 복합적 과제들을 과연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남아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주요 EU 국가들은 경기둔화를 막기 위한 ECB의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고 있어 라가르드 총재가 ECB의 통화정책과 회원국들의 재정정책 사이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글로벌 시장에서 눈여겨보는 부분은 향후 ECB의 통화정책에 대한 라가르드 총재의 조율능력이다. 은행가이자 경제학자인 마리오 드라기 전 총재는 고별사에서 “통화정책은 회원국의 재정정책과 결합할 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만, ECB의 현재 통화정책은 과거와 달리 경기부양에 대한 힘을 잃고 있다”고 말했는데 드라기가 풀지 못한 숙제를 신임 총재가 해결할 수 있을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드라기 전 총재의 고별사에 대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통화정책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며 ECB의 정책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다.


외신들은 라가르드의 뛰어난 ‘정치력’에 후한 점수를 주면서 그가 재정정책 등에서 분열 가능성이 큰 ECB의 의견 통합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IMF 등에서 지금까지 보여준 탁월한 정치력이 ECB의 많은 과제를 풀 열쇠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폴리티코는 “라가르드 총재가 은행 경험과 경제학자의 이력이 없다는 비판은 핵심을 놓친 것”이라며 “지금 ECB에 필요한 것은 통화정책 전문가가 아니라 신뢰와 합의를 재건할 수 있는 정치기술”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EU 회원국들의 역학관계로 보면 전통 경제학자가 제시하는 ‘정책’보다 회원국들을 동참시킬 수 있는 ‘정치’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신문은 “다행스럽게도 라가르드는 프랑스 재무장관과 IMF 총재로서 독일 지도부와 강한 관계를 맺는 등 인맥과 정치적 기술을 가지고 있다”며 “이 같은 자산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구체적인 분석과 정책은 경제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업무 스타일상 회원국 정상들과 만나 외교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프랑스 태생이지만 20년간 미국 대형 로펌에서 기업 담당 변호사로 일하면서 익혀온 미국식 직접화법과 협상기술, 여기에 결론이 날 때까지 회의를 밀어붙이는 추진력 또한 최악의 시기를 맞은 ECB에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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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최초’ 수식어를 가진 라가르드 총재는 8년간 IMF를 이끌어오면서 강한 존재감을 나타내는 등 글로벌 금융업계에서는 유명인사다. 하지만 그의 명성은 경제 분야와 금융업계로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포브스’가 발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리스트에서 매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패션잡지 ‘보그’도 그의 뛰어난 패션 감각에 주목하는 등 이른바 글로벌 ‘인싸’로 통한다.

어린 시절 독특한 이력도 화제가 되곤 한다. 지난 1956년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영어와 문학 교사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대 시절 싱크로나이즈드 수영 국가대표를 지냈다. 고등학생 때는 미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미국과 인연도 깊다. 파리 10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당시 빌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코언 상원의원의 인턴 보좌관을 맡았다. 이후 시카고에 기반을 둔 로펌인 베이커앤드맥킨지에서 기업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고 1999년 회장에 올랐다. 그의 능력을 눈여겨본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그를 통상장관으로 발탁했고 니콜라 사르코지는 재무장관으로 낙점했다. 뛰어난 영어 실력과 탁월한 협상력을 인정받은 그는 최근 프랑스의 차기 대권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여성 권리 찾기에 적극적이었던 그가 ECB 수장이 된 것을 계기로 유럽 금융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었던 리먼브러더스 사태에 대해 “리먼브러더스가 리먼시스터스였다면 경제위기는 분명히 다른 양상을 보였을 것”이라고 말하며 여성의 능력을 강조해왔다. CBS는 “라가르드는 아르헨티나 등의 IMF 구제금융 조건에 여성 권리 증진 항목을 처음으로 넣는 등 여성 인권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라가르드가 IMF 수장으로 있는 동안 여성 비율은 44%까지 치솟았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ECB 집행이사 25명 중 라가르드를 포함해 여성은 단 2명”이라면서 “중앙은행 및 금융회사의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노현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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