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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초저금리의 역습

이혜진 증권부 차장

이혜진 증권부



상식을 뒤흔드는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열린 지 5년이 넘었다. 경기침체에 대한 극약 처방으로 유럽중앙은행(ECB)이 주요 중앙은행 중 처음으로 지난 2014년 6월 시중은행의 중앙은행 예치금 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췄다. ECB가 전인미답의 초강수를 두자 비슷한 처지의 일본도, 비(非)유로존 유럽국 중앙은행들도 그 뒤를 이었다.

돈을 빌려주면 오히려 ‘벌금’을 내는 마이너스 금리라니, 해외 토픽감인 듯한데 이제 전 지구적 현상이 돼간다. 전 세계 국채의 25% 이상인 17조달러(2경원) 규모의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다. 그 규모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초저금리의 블랙홀에 이제 유럽과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지구상의 거의 모든 국가가 빨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5년간 강도가 높아진 마이너스 금리 처방의 효과는 신통치 않다. 유럽 경제는 올해 1% 성장도 버겁고 물가도 제자리다.

대신 마이너스 금리가 초래한 치명적인 내상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금융산업이 대표적이다. 역마진에 시달리는 유럽 은행과 보험사들은 대규모 감원에 돌입했다. 특히 운용 규제가 강력한 국내의 생명보험사들은 죽을 날만 기다리며 연명하는 ‘데드맨워킹’ 중이다.


초저금리는 소비 진작에도 역효과를 내고 있다. 이자가 줄어 불안해진 예금자들은 미래를 위해 지금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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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금리가 투자를 촉진한다는 공식은 이제 낡은 경제학 교과서 속 얘기다. 투자자들은 주식과 같은 실물·위험 자산에 투자하기는커녕 0.1%포인트라도 더 주는 안전자산을 찾아 헤맨다. 한국에서는 그러다가 ‘안전한’ 독일 국채 파생결합펀드(DLF) 사달이 났다.

고금리를 찾아 떠도는 돈은 세계 곳곳에서 부동산 등 각종 자산가격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국의 강남 아파트뿐만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시의 고급주택·빌딩 가격은 치솟았다. “무수익 정도면 양반이다. 보유하면 손해가 확정되는 마이너스 국채가 사기라면 사기일 것”이라는 비트코인과 금 투자 옹호론자들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에 더해 초저금리가 디플레이션 탈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마이너스 금리의 본산, 유럽에서부터 회의론이 번지고 있다. 스웨덴 중앙은행은 마이너스 금리 무용론을 펼치며 다음 달 금리 인상을 공언했다. 독일·네덜란드, 심지어 이탈리아의 중앙은행가들도 초저금리의 부작용을 직시하라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한국은 마이너스는 아닐지라도 내년이면 기준금리 1%가 깨질 것이 유력하다. 장기 초저금리로 인한 내상을 우리도 결국 피할 수 없다. 뻔히 보이는 그 길을 우리도 갈 것인지 더 늦기 전에 자문해야 한다. hasim@sedaily.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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