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한국 추상회화, 김환기 이전에 남관 있었다

■현대화랑 '남관 회고전'

김환기보다 먼저 프랑스 건너가

현지인정받으며 추상畵 꽃피워

故 백상 장기영에 후원받기도

시대별 주요작품 60여점 전시

남관의 1981년작 ‘황색의 반영’ /사진제공=현대화랑남관의 1981년작 ‘황색의 반영’ /사진제공=현대화랑



김환기(1913~1974) 이전에 남관(1911~1990)이 있었다. 둘의 공통점은 일찍이 서양미술의 본산인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현지에서 인정받았고, 서양화를 기법으로 하되 기법과 예술성 면에서 독자적 작품세계를 완성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김환기가 국내 미술품 경매사상 최고가 기록을 5번이나 자체 경신하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라는 수식어와 ‘최고’라는 극찬을 몰고 다니는 것에 반해 남관은 그가 이룬 업적이 다소 저평가 됐다. 나이뿐만 아니라 파리로 가 기반을 다진 것 또한 남관이 2년 앞섰는데도 말이다. 김환기가 뉴욕으로 떠나 1970년대에 자신의 추상화를 완성했다면, 남관은 1960년대 파리에서 추상미술을 꽃피웠다.

남관이 파리로 건너간 1955년부터 작고한 1990년까지 시대별 주요작품 60여 점을 엄선한 대규모 회고전이 6일부터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열린다.

전시된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은 1957년작이다. 두툼하고 굵은 붓으로 그은 직사각형과 원·타원형 등이 다닥다닥한 추상화다. ‘피난민’이라는 제목을 의식한다면 그림 가운데 갓난아기를 안고 웅크린 엄마, 떨어질새라 그 옆에 무릎 붙이고 앉은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절박한 상황에서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는 숱한 사람들의 형상이 기하학적 형태로, 즉 추상화(化)되어 그림에 스며들었다. 무채색의 화면 구석구석에 불빛처럼 반짝이는 노랑·주황·분홍·파랑 등의 색채는 ‘희망’이다.

남관 1957년작 ‘피난민’남관 1957년작 ‘피난민’


이 그림을 완성한 이듬해 남관은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의 대표미술제 ‘살롱 드 메(Salon de Mai·5월전)’에 초대됐다. 파블로 피카소가 1951년 ‘한국에서의 학살’을 발표한 게 이 전시였다. 그 시기를 회상하며 작가는 “이때 경제적으로 계속 곤란을 받고 있었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많은 위안을 받고 한층 더 맹렬한 제작 생활에 몰두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동양적 혹은 한국적인 것에 대한 모색도 확실해졌다”고 적었다.


남관은 191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났다. 청송공립보통학교 재학 시 일본인 교장의 추천을 받아 도쿄로 건너갔다. 태평양미술학교를 졸업하고 현지에서 ‘화가’로 살다가 일본의 패전 소식에 기뻐하며 즉시 귀국했다. 또 전쟁이 터졌다. 종군화가로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당시의 상처가 평생의 작품 전반에 깔렸다. ‘어떤 작품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는 프랑스행을 결심했다. 1954년 10월 서울 미도파백화점화랑에서 도불(渡彿)기념전을 열고 그해 12월 배를 타고 떠났다. 당시 흙 속 진주이던 남관을 알아본 이가 바로 백상 장기영 서울경제신문·한국일보 창업주였다. 생전의 남관은 “1949년 전시 때 장기영씨(당시 한국은행 재직)가 ‘호박을 이고 가는 소녀’를 사갔다”면서 “1954년에 서울을 떠나 일본 요코하마에서 파리행 배를 타고 가는 동안의 기행문과 데생을 신문에 기고했다”며 후원자와의 일화를 밝힌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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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 전시 전경.‘남관의 추상회화 1955-1990’ 전시 전경.


남관 1968년작 ‘이끼 낀 형태’ /사진제공=현대화랑남관 1968년작 ‘이끼 낀 형태’ /사진제공=현대화랑


프랑스로 간 남관은 고대 유물과 유적지에 영감을 받아 낡은 벽, 황폐한 뜰,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전쟁의 상흔도 있었지만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남았고 먼 미래에도 존재할 ‘어떤 것’을 이루고 싶었다. 특히 1962년부터는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게 하는 형상을 화면에 드러내기 시작했고 전쟁통에 목격한 잘린 시체 모양 종잇조각을 캔버스에 붙이기도 했다. 콜라주 방식으로 종이를 붙였다가 떼고, 그 위에 물감을 칠하고 흩뿌리고 또 긁어내는 등 열정적으로 작업했다. 그 결과인 작품들은 깊은 바다처럼 짙푸른 색 속에서 형광안료 같은 빛을 뿜어낸다. 평면이지만 공간성을 갖게 됐고, 이미지는 낮에 내리는 눈송이 혹은 밤에 쏟아지는 별빛처럼 찬란하다.

1966년 당시 최고 권위의 망통회화비엔날레에서 1등상을 받은 남관은 1968년 귀국길에 올라 홍익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그의 작품은 파리국립현대미술관과 파리시립미술관 등지에 소장돼 있다. 남관은 화가 신금례와 결혼해 외아들 남윤 씨를 두었다. 그러나 프랑스로 프랑스로 떠나면서 부부 사이가 멀어졌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로 유명한 시인 김광섭의 딸이자 소설가인 김진옥과 재혼했다.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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