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구멍 뚫린 '4차산업 테크트리'

민병권 바이오IT부 차장

민병권 차장민병권 차장



지난 2014년 어느 날 정부세종청사 앞을 지나는 주요 도로인 한누리대로 앞으로 지나던 기자는 웃지 못할 촌극을 목격했다. 정부와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운전기사 없이 달리는 신개념의 무인간선급행버스(BRT)를 도입하겠다며 대대적으로 도로에 깔아 놓았던 전용 차로가 도로 파헤쳐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현장의 한 공사 관계자에게 물어보니 “수입하기로 한 무인버스 운영이 중단되면서 전용 차로에 깔아 놓았던 자석 레일을 전부 파헤쳐 없애고 일반 버스 전용 도로로 복구하는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시 시범 도입이 추진됐던 BRT는 도로의 바닥에 설치된 자석 신호를 무인버스가 읽어 기사 없이 정해진 코스를 주행하는 바이모달트램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바이모달트램은 국산화가 안 돼 고가 논란을 무릅쓰고 해외 제품을 수입했는데 그마저도 고장 등으로 말썽이 잦아 운행이 중단되고 말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주먹구구식 행정으로 고가의 바이모달트램 수입 비용은 물론이고 관련 도로 재건설 비용까지 매몰한 셈이 됐다.


한국철도기술원은 바이모달트램의 해외 원천기술 업체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2018년에서야 국산으로 상용화했다. 그러나 인공지능(AI)과 첨단센서에 기반 한 최근의 자율주행기술에 비하면 솔직히 시장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관련 산업계의 평가다. 바이모달트램을 둘러싼 정부와 지자체의 블랙코미디는 기술 국산화 및 산업 기반의 자립화, 타기술 대비 경제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밀어붙인 주먹구구 행정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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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자율주행 혁명을 일으키겠다고 주창하는 현 정부에서는 좀 달라졌을까. 올해 6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등 주요 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상암동에서 열린 자율주행 페스티벌 행사에서 도로 위를 달린 자율주행버스는 중국산 제품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레이저로 주변 장애물 등과의 위치를 측정하는 라이다를 비롯해 일부 센서류를 국산화한 기업들이 제품 홍보에 나서기도 했지만 그들조차도 대체로 “자율주행차 센서류 중 대부분은 이미 미국산이나 중국산이 가격·기술 경쟁력 측면에서 시장을 장악했고 우리나라는 이제 겨우 일부 부품만 상용화한 단계”라고 비관론을 폈다. 근래에 만난 전장부품 개발 전문가들도 “자율주행버스의 차체는 국내 기업이 만들더라도 전장부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칩과 같은 전자장비와 운영 소프트웨어(SW)의 대부분은 상당 기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산 기술 생태계의 미비 문제는 자율차 분야에서만의 딜레마가 아니다. 드론·AI·빅데이터·블록체인·양자기술을 비롯해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산업 분야 대부분에서 해외 기술 및 부품 의존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이 같은 테크트리(유관 기술들의 계통을 나무줄기·가지 모양으로 시각화한 그림)의 구멍을 국산화로 언제까지, 누가 어느 수준으로까지 보완 가능한지에 대해 정교한 셈법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산업 진흥정책을 편다면 바이모달트램 논란과 같은 블랙코미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newsroom@sedaily.com

민병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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