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쥐는 돈 없는데 매출채권 청산도 안돼”…기업 자금난 심화
[‘돈맥경화’ 빠진 상장사…본지 573곳 반기보고서 조사]
올 영업활동연금흐름 평균 1,195억…3년새 31%나 줄어
매출채권 13.8% 늘고 회전율은 11.86으로 감소세 지속
“기업경기 악화 신호”…일부선 유동성 확보 위해 자산매각도
국내 증시에 상장한 가정용품 업체 A사의 김덕재(가명) 대표는 매년 추석 때마다 거래처의 매출채권과 어음을 정산해주곤 했다. 추석인 만큼 외상을 미리 갚아 거래처의 현금흐름에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올해는 지난번만큼 매출채권을 상환할 수 없었다. 당장 A사부터 현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요즘은 돈이 워낙 안돌다 보니 거래처끼리 인심을 쓰기도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씁쓸해했다.
10일 서울경제가 제조·유통업에 종사하는 국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73곳이 2016년부터 올해까지 제출한 반기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평균 영업활동현금흐름은 감소하는 반면 매출채권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하는 가운데 물건이나 서비스를 판 대가로 현금 대신 외상을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올해 이들 상장사의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평균은 1,195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보다 20.5% 줄어든 액수며 2016년에 비해선 31.3% 줄어든 수치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지난 2016년 1,741억원에서 2017년 1,410억원으로 감소했지만 지난해엔 오히려 1,506억원으로 반등했다.
통상 영업활동현금흐름이 악화하는 이유로는 수익성 악화나 외상 증가 등이 꼽힌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당기순이익에서 매출채권·미수금 등을 비롯해 감가상각비, 운전자본 변동 등을 가감해 계산한다. 조성표 전 한국회계학회장(경북대 교수)은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현금이 줄어들었다는 건 기업 수익성에는 좋지 않은 신호”라며 “단 매출이 증가하는 가운데 매출채권도 같이 늘어나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악화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들 상장사 573곳의 매출액과 매출채권은 동시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평균 매출채권액은 4,453억원으로 지난 2016년 3,911억원에 비해 13.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529억원에서 1,711억원으로 11.9% 늘었다.
문제는 매출채권회전율이 2017년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매출채권회전율은 매출액을 매출채권으로 나눈 것으로 높을수록 매출채권이 현금으로 바뀌는 속도 역시 빠르다는 뜻이다. 평균 매출채권회전율은 2017년 14.86을 기록하다 2018년엔 12.51로 하락했고 급기야 올해에는 11.86까지 떨어졌다. 한 공인회계사는 “매출채권은 매출액과 함께 늘어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실제 영업활동을 통한 자금 회전 추이를 보려면 매출채권회전율을 봐야 한다”며 “매출채권회전율이 낮다는 건 그만큼 기업 간에 현금흐름이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영업을 통해 원활하게 현금을 확보하지 못하다 보니 유형자산을 팔아 자금을 조달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가령 한진중공업은 지난달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서울 광진구 동서울터미널 부지를 4,025억원에 신세계동서울PEV에 매각한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 부지의 가치는 한진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는 총자산의 14.72% 수준이다. 실제로 한진중공업의 상반기 기준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지난 2017년 2,583억원을 기록한 이후 하락하다가 올해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국내 유가증권시장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최근 들어 수익성이 악화하다 보니 자산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현재 경기가 좋지 않다고 보고 디레버리징에 들어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