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우루과이 대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좌파 대통령이 당선됐다. 당시 뉴욕타임스 남미지국장이었던 래리 로터는 좌파 정권 등장을 ‘핑크 타이드(Pink Tide)’라고 표현했다. 번역하면 ‘분홍 물결’이다. 당시 남미에서 온건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잇따라 집권한 현상을 뜻한다. 공산주의 물결을 뜻하는 ‘레드 타이드(Red Tide)’와 구별해 이렇게 이름 붙였다. 1999년 베네수엘라에 우고 차베스 정권이 출범한 뒤 2014년까지 남미 12개국 중 10개국에서 좌파 정권이 밀물처럼 들어섰다.
하지만 선심성 복지 정책을 기반으로 한 핑크 타이드는 벽에 부딪혔다. 석유·원자재 가격 하락과 지도자 부패 등으로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국가재정이 파탄 상태에 빠지자 민심이 돌아섰다. 2013년 차베스의 사망과 2016년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의 탄핵으로 분홍 물결은 급속히 퇴조했다. 2015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우파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선출됐다. 이어 2018년 3월 칠레에서 억만장자 사업가 출신의 세바스티안 피녜라, 같은 해 10월 브라질에서는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남미에서 영향력이 큰 ‘ABC(아르헨티나·브라질·칠레)’ 세 나라에서 줄줄이 우파가 집권한 것이다.
최근에는 다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좌파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후보가 승리하면서 핑크 타이드 부활 가능성이 거론된다. 칠레의 우파 정권도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을 시도하다가 이에 반발한 대규모 시위 발생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남미 좌파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부패 혐의로 수감됐다가 최근 석방돼 몸을 풀고 있다. 반면 남미의 최장수 좌파 지도자였던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으로 10일 집권 14년 만에 전격 사임했다. 남미는 요즘 분홍 물결과 ‘보수 물결(Conservative Wave)’이 교차하는 과도기에 있다. 하산 길에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포퓰리즘 정책 추진과 중단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골병이 드는 남미 경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김광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