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비평과 독특한 헤어스타일로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뉴욕 지성계의 여왕’, 문화평론가 수전 손택은 저서 ‘타인의 고통’에서 전쟁 사진을 두고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러운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라며 타인의 고통을 상품화하는 데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타인의 고통을 ‘전시’해서 감상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대한 그의 비판은 폭력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많은 생각 거리를 안겨준다.
신간 ‘터프 이너프’는 수전 손택을 포함해 여성 특유의 감상주의를 배제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는 미학적, 정치적, 도덕적 의무를 열정적으로 설파한 6명의 ‘터프한’ 여성 지성인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감정의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거부하고 이를 뛰어넘으려 한 시몬 배유, 한나 아렌트, 멜 메카시, 다이앤 아버스, 조앤 디디온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지식인들이다.
시몬 베유는 1·2차 세계대전 이후 종교가 부흥하던 시대에 위안과 구원을 강조하는 기독교를 비판하면서 고난을 신의 ‘사랑의 표지’로 보고 고통과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민, 위안, 구원이라는 ‘마취제’를 거부한 것이다.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한 고통의 묘사가 감정에 압도돼 현실을 가리지 않도록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는 감정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고통을 분석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겠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메리 매카시는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사실에 천착하며, 독자들에게 충격요법을 쓰거나 풍자를 하기 위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952년 잡지 ‘크리틱’을 창간한 그는 “미국 저널리즘과 지식인들 사이에 사실이 부재하다”고 창간 취지를 밝히기도 했을 정도다. 사진작가 다이앤 아버스는 예기치 못한 순간이나 불편한 진실로서의 ‘현실’을 담았다. 그의 작품은 고통을 강조해 공감을 이끌어 내기보다는 카메라의 미학적 감정과 개인의 감정을 기술적으로 분리한 것으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뉴욕 센트럴파크, 장난감 수류탄을 든 소년(1962)’은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5년 ‘마술적 사유의 한해’로 전미도서협회상을 수상한 조앤 디디온은 자기연민은 자기기만과 같은 것이라며 도덕적 가혹함을 옹호한 대표적인 여성 지성인이다. 감상주의는 고통을 달래는 동시에 감각을 마비시키는 도덕적 결핍으로 이어진다는 신념과 철학이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한다. 1만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