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동십자각] 산으로 가는 DLF 대책

서은영 금융부 차장




“바다가 위험하니 수영을 금지할 것인지, 구명조끼를 입고 수영할 수 있게 할지 여러 의견을 들어보겠다.”(9월23일, P2P금융법 제정 관련 토론회) “수영을 막은 것이 아니다. 우선 실내수영부터 하자는 것이다.”(11월15일, 금융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개선방안 간담회)

우리·KEB하나은행 프라이빗뱅커(PB) 고객들의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줄곧 은행들의 고위험상품 판매를 바다수영에 비유해왔다. 손실 가능성 20~30% 이상인 사모펀드를 앞으로 은행에서 팔지 못하도록 강제조치한 것은 결국 깊이도, 파도의 높이도 가늠할 수 없는 바닷물을 안전지대인 양 둔갑시킨 은행들에 더 이상 바다에서 헤엄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은 위원장의 비유는 정곡을 찌르는 듯하지만 많은 오류가 있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문제의 본질을 흐리기 때문이다.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부터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까지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에 따른 투자자들의 대규모 손실이 빚어질 때마다 구명조끼를 보강하는 데 치중했다. 지난 2008년 파워인컴펀드 사태 이후에는 펀드 판매절차 표준 매뉴얼이 만들어졌고 펀드 판매인력 등급제 외에도 고객의 투자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상품을 권유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이듬해에는 일명 판매현장 암행검사로 통하는 미스터리 쇼핑도 시작했다. 2011년 8,571억원의 투자 손실로 이어졌던 저축은행 후순위채 사태 이후에는 고령 투자자를 위한 투자 숙려기간, 가족조력제도, 중간안내제도 등을 보완했다. 그러나 2013년 동양증권이 자금난에 빠졌던 동양그룹의 CP와 회사채를 일반 투자자 4만여명에게 사기 판매한 이른바 ‘동양 사태’가 터지면서 그간 토대를 다졌던 금융소비자 보호제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돼버렸다. 금융상품 하나를 가입할 때 사인해야 할 서류의 종류와 장수는 무수하게 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결국 ‘영혼 없는 전문가’와 ‘기업윤리 없는 금융회사’에는 어떤 규제와 제도를 들이대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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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성장률과 제로금리가 뉴노멀이 되면서 금융사와 소비자 간 분쟁은 더욱 빈번해질 것이다. 리스크에 대한 분별력도 없이 1%라도 투자 수익률을 높이려는 금융소비자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단기 성과주의에 눈이 멀어 리스크를 감추고 고객의 돈을 유치하려는 금융사의 관행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백약이 무효하자 당국은 결국 위험의 소지를 아예 잘라버리기로 했다. 바다수영에 능한 투자자들마저 실내수영장으로 등을 떠미는 식이다. 다른 바다(증권사 등)로 가면 그만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불완전판매를 일삼는 영업 관행(HOW)’의 문제를 ‘나쁜 상품(WHAT)’의 문제로 둔갑시켜버리면 불완전판매에 따른 대규모 손실 사태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 뻔하다. ‘HOW’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불합리한 판매 관행으로 되돌아가려는 금융사의 회귀본능을 막아설 비책으로 거론됐던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는 결국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위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위로 돌아갔다. 그래서 당국의 후속 조치는 더욱 중요하다. 이제라도 도돌이표처럼 이어지는 불합리한 영업 관행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고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후진적인 금융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다. supia927@sedaily.com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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