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를 통해 기업분석 정보를 이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세요. 감사로 정확해진 투자정보를 얻게 돼 혜택을 보는 것은 투자자인데 그 비용인 감사보수는 기업이 전부 부담하는 것,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최근 만난 한 회계법인 대표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되는 지금이 감사보수 부담을 공론화할 때”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기업이 6년 연속 감사인을 자유 선임하면 이후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하는 제도다. 내년부터 자산규모가 190억원 이상인 상장사를 시작으로 자산규모 순으로 상장사 전체에 순차 적용된다. 이달 지정 통지를 받은 220개 상장사는 감사보수 협상이 한창이다. 지정된 회계법인과 협상에 나선 상장사들은 예전보다 크게 오른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기존의 직권 지정이 자유수임을 대체한 경우 감사보수를 2.5배 인상하는 효과가 있었다.
기업 입장에서 비용 증가는 언제나 부담이지만 특히 작은 기업에 감사보수 인상이 미치는 영향은 더 크다. 사람 한 명을 뽑는 데도 비용으로 숙고를 거듭해야 하는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감사보수 인상은 더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자금 확보를 위해 상장을 노리던 많은 기업이 감사보수 인상으로 상장비용이 커지며 상장을 주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회계법인이라고 마냥 신이 난 것은 아니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회계법인 내 노조설립 등으로 회계사의 인건비가 급등해 수익성이 크게 떨어져 감사보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감사보수를 두고 서로 아쉬운 소리를 하는 모습에 주기적 지정제의 입법 취지를 돌아보게 된다. 금융당국은 회계 투명성 강화를 통한 투자자 보호를 위해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주기적 지정제를 비롯한 각종 제도를 도입했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감사보수 부담 논의를 시작하면 어떨까. 혜택을 보는 사람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에 입각해 공시를 통해 기업정보를 열람하는 투자자가 일부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을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기업분석 정보인 증권사 리서치보고서의 현 상황을 보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증권사가 소속 연구원의 노력이 들어간 지적재산임에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해온 분석보고서의 제값 받기에 나섰지만 오랜 ‘공짜 관행’에 기대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는 언제나 양질의 기업분석 정보를 얻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만연한 ‘공짜 관행’이야말로 투자자가 정확한 기업분석 정보를 얻기 위해 먼저 넘어야 할 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