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권홍우 칼럼]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방위비 분담금

<권홍우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한국에 대한 갑질, 동맹 약화 초래

매출, 이익 구분 없이 손만 내밀어

일본 적용시 분담금 연 200억 달러

한미동맹만큼 한중 교역도 생명선

미국 주류 사회에 부당성 알려야




협상은 강자가 유리하기 마련이다. 갑(甲)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1942년 일본 25군 사령관 야마시타 도모유키 중장은 협상에 나서는 강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예스까, 노까.” 싱가포르 방어전에서 패한 후 항복의 조건을 다는 영국 극동군 사령관 아서 퍼시벌 중장에게 그는 “할래, 안 할래(Yes or No)”만 물었다. 처절한 패자인 퍼시벌 장군은 생사 여탈권을 갖게 될 승자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이 보여주는 행태가 ‘긴 칼 찬 정복자’처럼 보인다. 미국에 묻고 싶다. 한국이 처절한 패자인가. 한국인처럼 평등의식에 민감한 사람들도 드물다. ‘갑질’을 참지 못한다. 상대의 힘에 눌리더라도 언젠가는 되갚는다. 한미 양국이 다음달부터 방위비 협상 4차 회의를 속개할 예정이나 전망이 극히 불투명하다. 3차 회의가 어이없이 깨진 뒤끝이어서 더욱 무거운 분위기 속에 진행될 수도 있다. 한국 협상단은 부디 ‘예가 아니면 듣지도 행하지도 마시라(非禮勿聽 非禮勿行).’

미국 대표단의 주장은 예의를 넘어 상식에도 닿지 않는다. 분담금 50억달러를 요구하는 미국 대표가 ‘부자이며 강한 나라인 한국의 연간 대미 흑자가 170억달러를 넘는다’고 강조했다. 저급한 셈법에 기가 막힌다. 매출 170원인 상인에게 보호비 명목으로 50원을 요구하는 조폭과 뭐가 다른가. 동네 양아치도 매출과 이익은 구분한다. 미국 대표단이 계산한 비율대로라면 일본은 미국에 연 200억달러씩 분담금을 내야 한다. 최근 3년간 연평균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680억달러를 넘으니까.


비상식은 협상 대표단뿐 아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과 관련해서도 미국은 비상식의 단면을 보여줬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지소미아 종료로 득 보는 건 북한과 중국’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해 들어왔다. 결국 수용하고 말았지만 에스퍼 장관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적인가. 짐작은 하지만 관여하고 싶지 않다. 미국의 문제니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한국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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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해방 직후부터 안보는 물론 경제 측면에서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통계로 확인 가능한 시점인 1965년 이후부터 올 9월까지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 누적액은 2,903억달러에 이른다. 문제는 중국(홍콩 포함)에 대한 흑자 누적액은 1조1,667억달러라는 점이다. 미국의 4배 이상이다. 분담금 증액을 위해서도 중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는 6,210억달러 적자다. 손익계산서로만 본다면 미국은 친구, 중국은 절친, 일본은 수지 저해요인, 좋게 봐야 극복 대상에 해당된다.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한 측면도 있지만 현실적·경제적으로도 일본은 넘어야 할 벽이다. 만성적 무역수지 적자, 기술 의존을 해결하지 않고는 언제 또다시 수출 규제 같은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미국은 이런 한일 관계의 경제적·현실적 측면을 무시하고 억지로 두 나라를 다시 묶었다. 빈정이 상할 대로 상한 한국인들은 과도한 분담금으로 자존심까지 무너질 판이다. 미국은 협상장에서 한국 대표단을 압박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넘을 수 없는 게 있다. 분담금을 대폭 늘리려면 한미 행정협정(SOFA) 개정은 물론 국회 동의까지 거쳐야 한다. 쉽게 될 리 만무하다.

지금과 같은 논의는 미국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릴 뿐이다.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의 승리를 주도했던 아테네가 쇠락한 이유는 자국 이기주의에 있다. 주변 도시국가들에 대한 갑질과 재정자금 반강제 예치 등 ‘아테네 퍼스트’에 도시국가들은 등을 돌렸다. 로마도 관용을 잃고 속주에 군사 지출을 강요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행보가 미국에 도움이 안 된다. 부디 아테네와 로마의 전철을 피하기 바란다.

미국과 한국 일각에서 주한미군 철수설을 흘리며 불안을 조장하는 동시에 분담금 협상을 압박하지만 주한미군은 결코 떠나지 않는다. 미국 협상단 대표의 말대로 ‘강하고 부자인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이유는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다. 우리 국민들도 우려할 게 없다.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에게 드릴 말이 있다.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계속한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시라. 우리의 명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다. 미국의 주류 사회는 아직도 이성이 통한다고 믿는다. 협상단의 뒤에 우리 국민이 있다.

권홍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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