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태 한진(002320)그룹 회장이 임원 감축으로 구조조정의 칼을 빼 들었다. 조 회장은 앞서 지난 20일 뉴욕특파원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버리겠다”며 고강도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그는 항공운송과 제작·여행업·호텔 사업 외에는 관심이 없다며 대대적인 비용절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29일 조 회장은 인천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린 ‘대한항공(003490) 50년사 편찬 기념식’에서 기자와 만나 “임원을 줄이는 것은 사업과 산업 등 상황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장이 좋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해 적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그룹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와 조직 슬림화 등 변화를 꾀하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한진그룹의 정기 임원인사는 2년 만이다. 매년 연말에서 연초에 정기 임원인사를 단행했지만 지난해는 ‘물컵 갑질’ 사건 등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데다 ‘강성부펀드’인 KCGI의 경영권 위협 등이 맞물리면서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와 임원인사를 생략했다. 조 회장의 취임 이후 2년 만에 단행하는 첫 임원인사인 만큼 한진그룹의 방향을 제시하는 청사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조 회장이 구조조정의 칼을 뺀 것은 한진그룹의 캐시카우인 대한항공이 글로벌 수요 감소 등의 악재로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적악화에 따른 구조조정의 첫 번째는 비용감축이다. 대한항공이 지출하는 고정비 중 인건비는 20.9%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여기다 한진그룹이 경쟁사 대비 임원의 비중이 높다는 지적이 계속돼 임원감축을 구조조정의 첫 번째 카드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인사는 또 고(故) 조양호 회장의 측근들을 용퇴시키며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조 전 회장의 ‘오른팔’로 불렸던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이 부회장직에서 내려오고 서용원 한진 사장, 강영식 한국공항 사장 등 그룹 계열사 사장 3명도 물러났다. 승진 인사 규모도 대폭 줄였다. 대한항공은 지난 3년간 적게는 21명에서 많게는 42명까지 임원 승진을 진행했다. 하지만 올해 임원 승진은 10명에 불과했다. 또한 임원 직위체계를 기존의 6단계(사장·부사장·전무A·전무B·상무·상무보)에서 4단계(사장·부사장·전무·상무)로 축소하고 불필요한 결재 체계 간소화 등 조직 슬림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복귀도 보류됐다. 업계에서는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벌어질 경영권 분쟁에 대비해 조 전 부사장이 복귀함에 따라 총수일가의 협력을 예상했다. 조 전 회장의 지분은 법정 상속 비율대로 조원태 회장(6.46%), 조 전 부사장(6.43%), 조현민 전무(6.42%)가 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다. 조 전무가 지난 6월 한진칼(180640)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맡으며 경영 일선에 복귀해 조 회장에게 힘을 실어줌에 따라 조 전 부사장 역시 한진칼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내년 주총에서 한진그룹의 우호세력 확보가 명확하지 않은데다 조 전무의 복직으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해 조 전 부사장의 복직이 미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진그룹은 인사 외에도 조직 슬림화를 위해 제동레저, 정보기술(IT)사업인 한진정보통신, 인터넷 통신판매 사업 싸이버스카이, 왕산레저개발 등을 정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동레저와 한진정보통신은 지속적인 적자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칼호텔 등 적자를 내고 있는 호텔사업은 턴어라운드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정리하고 돈이 되는 사업을 먼저 하겠다”며 “호텔은 리모델링을 고려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 때문에 고민”이라고 말했다. 또 항공노선의 비수익 노선 정리와 더불어 화물업의 단편적인 구조조정도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은 9월 선제적으로 1,000억원대의 적자를 낸 화물판매·운송·터미널 중 청주·대구·광주의 운영을 중단했다. 이어 국제 화물도 올 3·4분기 글로벌 경기부진에 따른 물동량 축소로 수송 실적이 11% 감소된 만큼 비수익 노선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이날 조 회장은 50주년 사사 편찬 기념식에서 “사사는 대한항공이 50년을 넘어 100년, 그리고 다음 세대로 계속 영속해 나아갈 때, 그 시대의 후배들에게 오늘은 어떤 의미로 기록될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며 “후대의 대한항공 임직원들이 지금의 대한항공에 대해 평가하고 기록할 때 부끄럽지 않을 대한항공의 오늘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