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바이오벤처의 잇단 기술수출은 계속된 임상 실패로 몸살을 앓던 업계에 단비와 같았다. 한동안 침체됐던 업계 분위기를 다시 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은 바이오벤처가 무리한 임상3상 강행 등의 리스크에서 벗어나 기술수출을 선택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바이오벤처들이 기술수출을 통해 안정적인 임상 진행을 도모한 것은 업계의 신약개발 과정이 정상궤도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회사 존립 위협하는 임상3상서 벗어나
신약개발을 위한 마지막 관문인 임상3상은 실패할 경우 회사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보통 임상3상을 진행하는 데는 3,000억원에 육박하는 비용이 필요하다. 최근 바이오 붐으로 바이오벤처에 자금이 유입되고 있지만 한 후보물질에 모두 쏟기에는 버거운 금액이다. 게다가 임상3상에 실패하면 이 금액은 모두 사라진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도 임상3상에 실패할 경우 직원 3,000명이 해고당한다”고 전했다.
올 한해 K바이오에 위기론이 퍼지게 된 것은 무리한 임상3상 강행과 임상 실패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허가된 세포 대신 종양을 유발할 수 있는 세포를 활용해 치료제를 만들어 임상3상이 중단된 코오롱티슈진의 ‘인보사’, 임상3상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유의미한 결과 도출에 실패한 헬릭스미스, 상업성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무용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신라젠의 ‘펙사벡’ 모두 임상3상 실패 이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었다.
아무리 경험이 부족하더라도 기초적인 부분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신약을 개발할 수는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게다가 임상3상 실패 발표를 전후로 나타난 경영진의 행동들은 투자자들의 의심을 더욱 키웠다. 주가 부양을 위해 임상3상을 무리하게 진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까지 나왔다.
기술수출 통해 임상 노하우도 축적
반면 기술수출의 경우 계약금 외에 글로벌 제약사와 공동으로 임상3상을 거치며 이들의 경험을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제약사 주도로 임상3상을 진행하지만 이 과정에 이전 임상시험 과정 데이터가 필요한 만큼 협업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아울러 기술수출한 물질이 신약으로 탄생해 시판에 성공하게 되면 로열티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 최근 독자적으로 뇌전증치료제 ‘엑스코프리’의 미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에 성공한 SK바이오팜 역시 엑스코프리 허가 이전에 수면장애 신약 ‘수노시’를 미국의 재즈파마슈티컬에 기술이전하며 경험을 쌓았다.
물론 기술수출된 의약품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바이오협회가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9,985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임상1상에 돌입한 신약 후보물질이 신약승인을 받은 사례는 10%도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을 포함한 일정 금액을 지급받는 만큼 위험이 임상 독자 강행에 비해 훨씬 작다는 지적이다.
반환된 후보물질이 다시 기술수출에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유한양행이 지난해 1조원 규모로 얀센에 기술수출한 ‘레이저티닙’은 2016년 중국 제약기업 뤄신바이오테크놀로지에 1억200만달러에 기술수출됐다가 반환됐던 물질이다.
K바이오 생태계 구축에도 기여
K바이오의 생태계 구성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K바이오는 자금력이 부족한 바이오벤처가 독자적으로 임상3상을 강행하고 전통 제약사들이 기술수출에 집중하는 모순적인 구조라는 지적이 있었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SK바이오팜의 ‘엑스코프리’, 셀트리온의 ‘램시마SC’ 등이 FDA의 허가를 받는 데 성공하고 바이오벤처 역시 기술수출에 계속 성공하며 대형 바이오 기업들이 앞에서 끌고 벤처가 뒤에서 받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며 “조만간 국내 바이오벤처가 개발한 후보물질을 국내 대형 바이오 기업이 허가받는 사례도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