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개도국형 자산배분 구조에서 벗어나려면

홍재은 NH농협생명 대표




며칠 전 통계청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이전계정’ 조사결과를 발표했는데, 27세부터 ‘흑자인생’, 59세부터 ‘적자인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창 때 번 노동소득(근로·사업소득)으로는 유년과 노년을 부양하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국민이전계정에 자본소득이나 이전소득 등은 반영하지 않았다고 하나, 노동소득만으로는 늘어난 기대수명과 길어진 자녀 학령기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결국 투자를 통해 부족한 생애소득을 메워야 한다.

문제는 투자할 데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시중은행에 가봐야 1%대 예금이 대부분이고, 저축은행과 같은 제2금융권도 2%대 상품을 찾기 힘들다. 미중 무역전쟁 등 경제안팎의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요동치는 주식시장을 보면, 선뜻 주식에 투자하기도 망설여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동산으로 계속 돈이 몰린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2018년 국민대차대조표를 보면, 가구당 순자산에서 토지·건물 등 부동산 자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76.2%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미국은 34.8%, 일본이 43.3%다. 선진국과 비교해 한국은 여전히 개도국형 자산배분 구조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으로 자산이 쏠리는 현상은 우리나라 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고질적 병폐다. 생산활동에 투입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자산으로 돈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다.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완화적 통화정책과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돈을 풀어도 부동산 시장에 돈이 흘러가 집값만 올릴 수 있다. 투기 심리는 자금의 유동성이 풍부할 때 발생한다. 경제가 탄탄하고, 성장세라면 생산활동·주식시장 등에 투자되는데 지금처럼 기업의 투자심리가 바닥이고, 주식시장은 몇 년째 답보상태라면 결국 사람들이 부동산으로 눈을 돌린다. 경제의 선순환이 깨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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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자금을 자연스럽게 부동산이 아닌, 생산자산으로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을 참고할 만하다.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굉장히 높아 지하경제 규모가 컸는데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영업의 탈루·탈세율을 낮추는 것이 시급했다. 당시 정부가 택한 방법이 신용카드 소득공제 정책이었다. 세금공제 혜택을 주자 세무당국이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의 소비내역을 자발적으로 신고하면서 세원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만약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를 막기 위해 세무조사를 강화하고, 탈세자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는데 집중했다면 각종 변칙적 방법이 난무했을 것이다. 당연, 지금과 같이 자영업자의 과세표준이 80% 이상 양성화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부동산이 저출산과 고령화로 더는 안정적 수익원이 되기 힘들다는 시그널과 함께 금융자산이 재산증식에 기여하는 경험이 쌓이면 사람들의 투자심리도 금융자산으로 기울 것이다. 경제주체가 자산포트폴리오에서 금융자산의 비중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의외로 집값문제를 해결하는데 효과적일지 모른다. 장기적 관점에서 금융회사들은 변화된 금융환경을 고려해 상품 고도화에 집중하고, 개인도 수익성과 안정성을 두루 갖춘 금융상품을 골라내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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