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대통령실

[동십자각]‘미스터 쓴소리’ 총리를 기대한다

윤홍우 정치부 차장

정치부 윤홍우 차장정치부 윤홍우 차장



“독립된 나라의 문지기라도 되겠다.”


지난 2006년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당시 열린우리당 의장)는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지명돼 당을 떠나면서 백범 김구 선생의 말을 꺼냈다. 그는 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당에 있든, 정부에 참여하든 진실로 중요한 것은 범여권의 성공을 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양해를 구했다.

집권 여당의 수장을 맡던 인물이 내각으로 가는 것은 당시에도 정치권의 반발을 불렀다. 야당은 ‘여당의 가장 높은 사람이 청와대의 아랫사람이 됐다’는 뜻에서 ‘청하(靑下)선생’이라 꼬집기까지 했다.


논란 속의 내각행이었으나 그의 산자부 장관 시절은 비교적 높은 평가를 받았다. 취임 초 ‘접시를 깨는 한이 있어도 먼지가 앉게 놔두지 말라’고 주문했던 그는 스스로도 부지런히 정책 현장을 누볐다. 재임 기간 수출 3,000억달러를 달성했고, 외국인 투자 유치 실적도 괄목할 만했다. 산자부 장관 때 그를 모셨던 한 관료는 “지독한 일벌레이면서도 협상가이고 덕장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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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국회의장까지 역임하며 국가 의전서열 2위에 올랐던 그가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기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했다. 삼권분립 훼손, 의전 서열 역행 논란 속에 야당은 “의회를 시녀화했다”고 조롱하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정 후보자를 ‘삼고초려’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도 적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17일 춘추관에서 총리 지명 발표를 한 후 바로 퇴장하지 않고 잠시 머뭇거렸다. 법률가 출신으로서의 고뇌가 얼굴에 묻어났고, 할 말이 남아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발표 직후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에게 “비상한 각오로 모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정 후보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가결시키며 이 정부를 탄생시킨 주인공 중 한 명이다. 동시에 문 대통령에게 빚진 게 별로 없는 정치인이기도 하다. 원하지 않던 총리직을 받아들이며 오히려 문 대통령은 또 한번 정 후보자에게 신세를 지게 됐다.

그런 만큼 ‘국무총리 정세균’에 대한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 정부 경제정책을 살릴 마지막 카드가 아닌가 싶다”고 까지 말했다. 규제와 혁신을 사이에 놓고 벌어질 대로 벌어진 기업과 정부의 인식 차를 극복하고, 위축된 기업인의 기를 살릴 책임이 정 후보자에게 있다.

동시에 진영논리와 지지율에 갇히기 쉬운 청와대를 향해 쓴소리를 멈추지 않는 따끔한 정치 선배의 역할이 절실하다. 정권 후반기가 될수록 청와대를 둘러싼 권력 누수 현상은 심해지고 사사건건 국정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별칭의 정 후보자가 누구보다도 ‘미스터 쓴소리’가 돼야 하는 이유다.
seoulbird@sedaily.com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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