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으로 요식엽 자영업자들의 폐업이이어지고 신규 창업또한 줄고 있는 20일 오후 평소 업소용 중고 주방용품과 식기류를 구입하려는 요식업창업자들로 북적이던 황학동 주방용품 거리가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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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찐빵·만두기계 거래가 제법 이뤄졌는데 올해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네요.”
19일 오후 찾은 서울 중구 동묘앞역 인근 황학동 주방거리. 국내에서 가장 큰 중고 주방기기·식기류 거래 시장이지만 거리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게마다 ‘고가매입 저가판매’라는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간간이 주방기기를 실은 트럭만 지나다닐 뿐 인적이 드물었다. 중고 주방시설업자 김모(68)씨는 “오늘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면서 온장고에서 캔커피를 하나 꺼내주며 쓴웃음을 지었다.
황학동 주방거리는 폐업한 식당에서 나온 중고 주방기구들이 새 주인을 맞는 곳이다. 장사가 안돼 영업을 중단한 자영업자들이 중고 주방기기와 식기류를 내놓으면 이른바 ‘나까마’로 불리우는 중간 수거업자들이 물건을 매입해 이곳으로 실어온다. 주방용품업자들은 중고 기기들을 세척하고 도색하는 등 재가공 과정을 거쳐 판매한다. 이런 탓에 황학동 중고 주방거리에는 자영업 체감 경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특히 이곳 중고 주방용품업자들은 최근 들어 ‘거래절벽’이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둔화로 폐업하면 쓰던 물건을 중고시장에 처분하기 마련인데 요즘은 이마저도 드물다는 것이다. 창업만큼 폐업도 많은 자영업의 ‘다산다사(多産多死)’ 구조에서는중고 물품 거래가 활발해야 하는데 요즘은 들어오는 중고 물건이 줄어들고 나가는 물량도 적다. 처분 비용을 들여 중고 용품·시설을 넘겨도 이를 만회할 만큼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니 처분을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느는 추세다. A수거업체 박모(49) 대표는 “점포를 철거하는데도 비용이 들고 중고 주방기기 거래도 잘 안되다 보니 고물상에 헐값에 처분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폐업 물품을 매매해 먹고 사는 폐업처리업체들도 사정이 어렵다. B중고주방용품 업체 최모(61) 대표는 “예전엔 이곳 거리 가게들도 10곳이 망하면 못해도 8~9곳은 다시 들어왔는데 요즘은 4~5곳 정도 들어올까 말까”라며 “폐업처리업체가 폐업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올 들어 자영업자들의 어려운 사정은 관련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기업대출 중 자영업자들이 주로 빌리는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지난 9월말 기준 332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조2,000억원(7.5%) 늘었다. 빚은 느는데 소득은 줄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영업자 소득의 가늠자인 가구당 사업소득은 1,177만원으로 전년 대비 5.3% 줄었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래 최대 감소 폭이다.
자영업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국에 비해 자영업 비율이 높은 구조적 원인이 가장 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악화하는 것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정부 정책의 영향 탓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황학동 중고거리에서도 나왔다. C주방용품업체 관계자는 “최근 거래했던 식당 사장도 인건비 부담 때문에 종업원 없이 부부 둘이서 일하며 버티다 결국 장사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며 “자영업의 어려움이 비단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위한 보다 세심한 지원책을 내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