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류촨즈




2004년 12월 중국의 한 국유기업이 IBM의 PC 사업을 인수한다는 소식이 글로벌 정보기술(IT)업계를 강타했다. 업력 20년의 레노버가 일약 세계 3위 PC 업체로 도약하면서 단순 임가공에 머물렀던 중국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버린 사건이었다. 당시 주변의 부정적인 의견을 물리치고 인수협상이 마무리된 데는 류촨즈(柳傳志) 레노버 회장의 역할이 컸다. 그는 인수 이후에도 최고경영자(CEO)에 IBM 인사들을 중용하는 등 레노버의 글로벌화를 밀어붙였다. IBM은 PC 사업부를 떠나보내며 이례적으로 신문광고를 통해 “아직 여러분이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기술 분야에서 가장 큰 이름”이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레노버를 지켜보겠다”고 축하했다고 한다.


류 회장은 1966년 인민해방군 시안군사전신공정학원을 나와 정부 직속의 중국 과학원에 몸담았지만 문화대혁명을 맞아 허난성의 농장에서 돼지를 길러야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그는 개혁·개방 바람을 타고 마흔한 살에 11명의 동료와 함께 과학원의 7평짜리 경비초소 건물을 빌려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초기에는 PC를 팔다 사기를 당해 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회사 한쪽 구석에서 채소와 시계를 팔아 연명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는 2008년 컴퓨터가 보조금 지원대상에 오르며 저가제품을 농촌에서 팔아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가 ‘중국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얻게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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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 회장은 평소 ‘타조이론’을 앞세워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전략을 활용하는 인물로도 유명하다. 기업이 최소한 타조만큼 덩치를 키워야 누구나 알아보게 된다는 뜻이다. 그가 중국의 수많은 창업가에게 자금을 대주고 경영기법을 전수해 ‘중국 IT 업계의 대부’로 불리게 된 이유다. 그는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경제성장에 크게 공헌한 민영 기업인 100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올해로 75세를 맞은 류 회장이 레노버의 모기업인 레전드홀딩스 회장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는 소식이다. 그의 후임에는 류 회장의 비서 등을 지낸 닝민(寧旻)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임명됐다. 개혁·개방 이후 부를 일군 1세대 창업자들이 속속 은퇴하면서 중국에서도 세대교체가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2세대 CEO들이 지휘봉을 잡은 중국 IT산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정상범 논설위원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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