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정국’에 휩싸이면서 야권 내 보수 대통합 작업이 잠정 중단 상태에 빠졌다. 한때 정치권의 중요 키워드로 주목받았던 보수 대통합은 정계 지각 변동까지 예고했지만 선거제 등 패스트트랙에 올려진 법안 처리를 두고 각 당의 셈법이 복잡해져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담긴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경우 각 당은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 경우 보수 대통합, 즉 빅뱅은 내년 총선 이후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보수 대통합의 한 축으로 꼽히는 새로운보수당 내에서도 보수 통합에 대한 회의론마저 나온다.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창당위원장은 “이른바 유승민 의원의 ‘보수재건 3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한 함께하지 못한다”며 “보수 대통합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한 안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유 의원이 제시한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가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자는 등 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보수 대통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패스트트랙 정국이 이어지면서 보수 대통합을 둘러싼 각 당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각 당의 셈법이 복잡해진 만큼 정치계의 핵심 키워드로 ‘통합’보다는 ‘각자도생’이 자리할 수 있다고 본다. 김형준 교수는 “보수 대통합은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대표의 복귀 여부와 시기는 물론 총선 성적 등까지 다양한 변수가 있다”며 “그 과정에서는 현 정치계 주역들의 세대교체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보수진영에서는 굳이 당을 합치면서 지금까지 지닌 공천 등 권한을 포기하는 어려운 길을 가기보다는 선거 ‘룰’ 변화에 맞춰 대처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독자적으로 당선될 길이 있다면 각 당은 (공천 등) 권한까지 넘기면서까지 보수 대통합을 논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며 “그만큼 선거제도가 어떻게 변하는지가 보수 대통합이라는 지형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