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구글은 10여명의 딥러닝 핵심 전문가를 확보하기 위해 영국 스타트업 딥마인드를 5억달러에 인수했다. 딥마인드 팀은 이후 알파고를 개발하고 구글이 인공지능(AI) 분야를 선도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다. 흥미로운 점은 기업 인수가 신규 시장 진입, 시장 점유율 확대가 아닌 핵심 인재 확보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크-하이어(Acq-Hire), 인수채용이다. 기업인수(Acquisition)와 고용(Hire)의 합성어로 페이스북의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인 드롭닷아이오(Drop.io) 인수부터 애플의 자율주행차 스타트업 드라이브닷에이아이(Drive.ai) 인수까지 실리콘 밸리를 중심으로 인수채용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성공 전략이 다름 아닌 핵심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라는 것을 시사한다. 예측할 수 없는 기술변화를 좇기보다 기술변화를 이끌 창의적 인재를 키우자는 것이다. 기존 성장 전략의 한계에 봉착한 우리 제조업도 여기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사람 중심의 성장 모델이다. 외부 기술 도입보다는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내부 혁신 역량을 키워 스스로 기술 발전을 선도해나가는 전략이다. 산업계·대학·정부가 함께 새로운 성장 모델을 설계해야 할 때다.
그 첫걸음으로 기업은 대학과 함께 인력 양성의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 대학 중심의 인력 양성은 기술변화 속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인력 수급 불균형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대학·산업계가 함께 교과과정을 설계하고, 기업 현장과 대학 강의실이 연결돼야 한다. 성균관대와 삼성이 함께 운영하는 반도체 계약학과, 서울대 8개 학과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반도체공학 연합전공 신설이 좋은 예다. 앞으로 이러한 사례가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산학협력 참여기업이 실질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과감한 유인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기업이 산학 협력을 주도하며 자연스럽게 대학과 인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학 교육 혁신도 필수적이다. 산업계 수요를 반영하는 유연한 학사제도가 운영되고 교수들도 교수법과 신기술에 대해 계속 탐구하는 혁신의 동반자가 될 때 대학은 ‘창의 인재의 산실’로 거듭날 수 있다. 학생들의 창의·융합역량을 키우기 위해 캡스톤 디자인 교육을 기업의 실무과제와 연계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교육 방식의 도입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정부도 인력정책 방향을 재정립할 계획이다. 우수한 인재가 모인 곳에서 산업이 일어나고, 그곳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부처별 칸막이를 넘어 산업정책과 인력정책의 실질적 연계가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 인력정책의 목표를 인력 양성과 배출 단계에 그치지 않고, 배출된 인재가 실제 산업현장에서 혁신을 이끌 수 있는 활용 측면에도 초점을 맞춰나갈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비전 및 전략’에서 산업발전 비전과 미래 인력 수요에 근거한 인력 양성을 강조한 것도 수요자 중심의 새로운 인력 정책으로 전환해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4차 산업혁명은 AI 등 두뇌산업이 핵심이다.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 없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돌이켜보면, 자원 빈국인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밑바탕에도 ‘사람에 대한 투자와 믿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