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사헬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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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초 서아프리카 말리제국의 왕 ‘만사 무사’는 1만2,000여명의 거대한 수행단을 이끌고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 순례에 나섰다. 황금이 실린 수백마리의 낙타 행렬과 식량 삼아 데리고 간 양과 염소 행렬을 이끌고 사하라사막을 넘는 모습은 널리 인구에 회자됐다. 이로 인해 말리의 수도 팀북투는 아프리카의 엘도라도로 불리기도 했다. 경제역사가들이 ‘무사’가 인류역사상 가장 큰 부자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을 정도다.


사하라사막과 그 남쪽 아프리카와의 경계를 서에서 동으로 잇는 지역을 사헬 지역이라고 부른다. 세네갈~말리~니제르~차드~수단 등을 잇는 6,400㎞ 지역이다. 말리제국은 이 사헬의 서쪽에서 한때 대제국을 형성한 것이다. 사헬은 아랍어로 (사하라사막의) 변두리라는 뜻이다. 15세기 중반부터 서유럽 국가들이 이곳에 진출하면서 어둠의 역사가 시작됐다. 노예무역이 성행하면서 인구가 급감했고 19세기에는 프랑스·영국 등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에 놓였다. 제2차대전 이후 하나둘 독립했지만 극심한 정치불안으로 빈곤과 기아가 만성화됐다. 1970년대부터 30여년간은 극심한 이상 가뭄으로 100만명 이상이 아사(餓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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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불안과 빈곤은 이슬람 극단주의가 싹을 틔우는 토양이 됐다. ‘이슬람국가(IS)’는 2014년 전후 중동 내 세력이 약화하자 이곳을 새로운 근거지로 삼아 테러·무장 단체를 육성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무장 반군 ‘보코하람’이 북부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며 ‘칼리프 국가’ 건설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해 아프리카에서 테러·무장단체의 공격으로 발생한 사망자 9,300여명 중 절반이 서아프리카 사헬에서 발생했다. 5월에는 한국인도 부르키나파소에서 인질로 잡혔다가 프랑스 군에 의해 구출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사헬 지대를 유럽으로 유입되는 테러리스트들의 ‘온상’으로 보고 2013년부터 4,500명의 병력을 투입해 테러 격퇴전을 벌이고 있다.

부르키나파소에서 지난 성탄절과 이브에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들의 테러 공격으로 민간인과 군인 수십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민간인 사망자 대다수는 여성이었고 최근 5년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최악의 테러였다. 사헬이 정치불안과 빈곤, 종교적 신념차이에 따른 살상의 고통을 극복하고 풍요로웠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때가 속히 오기를 염원한다. /오현환 논설위원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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