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헌재, 외교적 파장 최소화…위안부 합의 '사회 갈등'은 지속될듯

■'한일 위안부 합의' 각하

헌재 '국가간 조약' 아닌 '비구속적 합의'로 봐

정부입장 고려해 외교적 부담 덜어주겠단 판단

위안부 피해자-국가 법적공방은 대법까지 갈듯

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유남석(가운데)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자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한일 위안부 피해자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가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잇따라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과 논란은 당분간 평행선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일 정부의 외교적 해법에 따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양국 합의로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지난해 말 결정한 후 고착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다.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 2015년 12월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일본 정부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위안부 문제를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해 당시 야당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굴욕적인 외교협상이라며 비판이 잇따랐다. 특히 일본 정부가 10억엔(약 100억원)을 재단기금으로 출연하기로 합의한 것을 놓고 피해자는 물론 국민 의견도 배제한 ‘졸속 외교의 전형’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이듬해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한국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에 대해 갖는 배상청구권을 실현할 길을 봉쇄했고 피해자들이 갖는 배상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피해자들이 갖는 일본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실현해야 할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것이며 피해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하고 국가로부터 외교적으로 보호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12년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과거 일본 탄광회사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며 받은 급여를 강제로 일본 우편저금이나 간이생명보험에 예금했지만 아직 돌려받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한일 협정 이후 한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의 재산권이 소멸했다고 주장하고 있어서다. 헌재는 한국 정부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한일 관계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일본이 1억원씩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으면서 급랭 국면에 돌입했다. 일본은 이후 한국에 대한 강도 높은 수출규제에 돌입했고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확산하면서 지금까지 첨예한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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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이번에 각하 결정을 내리면서 위안부 합의가 ‘국가 간 조약’이 아니라 일종의 ‘비구속적 합의’로 판단했다. 헌재는 “비구속적 합의의 경우 그로 인해 국민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것”이라며 “따라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조약이 아니라 합의이기에 헌법소원을 제기할 효력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는 의미다. 헌재는 양국이 구두 형식으로 합의했고 조약 체결 절차를 거치지 않아 법적 관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구속적 합의로 봤다.

법조계에서는 헌재의 이번 판단이 위안부 합의 자체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지만 외교부의 입장을 고려해 외교적 파장과 논란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했다. 앞서 외교부는 “외교적 합의는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헌재에 각하 의견서를 제출했다. 헌재가 이번 헌법소원에 대해 합헌 대신 각하를 결정한 것도 현 정부에 외교적 부담을 지우지 않겠다는 판단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의미다.

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동준 변호사가 한일 위안부 합의는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27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동준 변호사가 한일 위안부 합의는 헌법소원 대상이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피해자와 국가의 법적 소송은 현재진행형이다. 서울고법은 26일 강일출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앞서 강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로 정신적·물질적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는 생존자 1인당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해 8월 열린 1심에서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외교적 행위는 국가 간의 관계에서 폭넓은 재량권이 허용되는 영역이기에 한일 위안부 합의는 국가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볼 수 없다”며 국가 승소로 판결했다.

강제조정을 결정한 2심은 결정문에서 “위안부 합의가 피해자 중심주의의 원칙에 반해 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을 국가가 겸허히 인정하고 국가는 앞으로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대내외적 노력을 계속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양측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조정안은 확정 판결의 효력을 가진다. 하지만 결정문 내용이 모호해 위안부 피해자와 국가의 법적 공방은 대법원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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