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의 마지막 날, 미 해군이 항공모함 에식스(CV-9 Essex·사진)를 함정 목록에 올렸다. 버지니아주 뉴포트 조선소에서 기공 1년 4개월, 진수 5개월 만의 취역. 전쟁의 와중이어서 이례적으로 빠르게 실전 배치된 에식스호는 일본과의 태평양전쟁이 끝나고 닻을 내렸다. 예비 함정으로 보관되던 엑식스호를 다시 쓴 동기는 한국전쟁. 현대화 개장을 거쳐 1951년 재취역해 쿠바 미사일 위기와 아폴로 7호 승무원 귀환 임무를 맡았다. 에식스호는 1969년 함령 27년째 영국 퇴역 후 1975년 고철로 팔렸다.
에식스함이 기억되는 이유는 현대사의 중요 장면을 간직했다는 점 이외에 또 있다. 미국이 전쟁 기간 중 무려 24척(전쟁 지속시 예상물량은 32척)이나 ‘과자 찍듯 뽑아낸’ 에식스급 항모의 네임쉽(1번함)이기 때문이다. 초기형 3만 800t, 후기형 3만7,000t(현대화 개장 이후에는 4만 7,800t)짜리 정규 항모를 이만큼 건조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비교할 만한 대상도 없다. 영국이 6척, 일본이 4척을 건조했을 뿐이다. 에식스급은 미국 경제의 거대한 전시생산 능력을 말해주는 상징물의 하나인 셈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3~4척의 미국 항모들은 ‘최소한 에식스급이 나올 때까지는 버티자’며 싸웠다. 에식스급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높았다는 얘기다. 항모는 물론 함재기 생산과 인력 양성도 예상보다 빨랐다. 일본을 비롯한 독일, 이탈리아 등 주축국은 전쟁을 뒷받침하는 전시경제에서 미국 한 나라도 감당하지 못했다. 미국은 정규항모보다 약간 적은 인디팬더스급 경항모 9척을 더 뽑았다. 전쟁 중 무려 3,801대나 생산한 1만t급 리버티 수송함(파생형 포함)을 기반으로 호위 항모도 100척 이상 찍어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마저 얄타회담 만찬장에서 ‘미국의 전시생산능력을 위하여 건배!’라며 미국 찬가를 외쳤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힘은 여전히 빛나기는 해도 저물어가는 태양 격이다. 종전 무렵 미국의 경제력은 전 세계의 절반을 약간 넘었지만 요즘은 23% 선. 경제력 자체는 상대적으로 약해졌음에도 영향력은 오히려 커졌다.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로 군림하는 달러의 힘과 전 세계 국방비의 절반 가량을 쓰는 군사력 덕분이다. 미 해군은 척당 130억 달러인 신형 항모를 10척 건조할 계획이다. 국방비 지출이 갈수록 가중된다는 얘기다. 두 가지가 걱정이다. 미국 경제가 군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막대한 군사비 부담을 ‘동맹국’에 떠밀지는 아닐지.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