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북미 비핵화 협상의 ‘레드라인(금지선)’인 핵무기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재개를 시사했다. 이는 지난 2018년 6·12북미정상회담의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것으로 북미 간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노동당 제7기 5차 전원회의 보고를 통해 “우리는 결코 파렴치한 미국이 조미대화를 불순한 목적 실현에 악용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이날 전했다.
◇北 ‘새로운 전략무기’는?=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핵·ICBM 시험 중단 등 ‘선제적 중대조치들’에도 미국이 한미군사연습과 추가 제재로 응답했다고 비난하며 “곧 머지않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해 말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했다는 점을 들어 신형 엔진을 장착한 다탄두 ICBM 발사 가능성을 점쳤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동창리 엔진시험장에서 이뤄진 시험을 고려하면 다탄두 ICBM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탄두가 3~10개로 분리되며 목표물을 타격해 요격이 쉽지 않은 다탄두 ICBM 발사로 미국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려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북한이 전략무기라는 모호한 표현을 쓴 만큼 북미협상의 파국을 상징하는 ICBM보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미대화 여지 남긴 金=김 위원장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및 핵·ICBM 시험 중단 조치에도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는 점을 비난하며 “더는 일방적으로 매여 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는 대화의 판을 깰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호전적인 북한 사회의 특성상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 수위조절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김 위원장은 ‘핵무기’ ‘ICBM’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하고 “우리의 (핵)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해 미국 측과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북한이 스스로 정한 연말 시한이 지났음에도 대화 판을 유지하는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것으로 관측된다. 올해는 특히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이 마무리되는 해로 김 위원장이 성과를 내려면 관광사업 등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김 위원장이 대화 판을 이탈할 경우 미중 무역분쟁 등에서 중국의 대미 협상 카드로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북한 매체들이 김 위원장에게 연하장을 보낸 각국 지도자를 소개하며 중국을 가장 먼저 호명한 것도 중국의 중요성을 방증한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는 “전원회의 결정서에 명시된 순서로만 보면 전략무기 개발보다 경제발전의 비중이 더 중요하게 다뤄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정권 입장에서 내부적으로는 경제발전과 인민생활 향상이라는 가시적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 의미 있는 대목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먹구름 드리운 남북관계=김 위원장이 신년에 대남 메시지를 내지 않고 있는 것은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하위변수로 인식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이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현 상황에서 핵심 동맹국인 남한이 제재완화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며 북한의 대화 복귀를 거듭 촉구했다.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새 전략무기’를 목격할 것이라며 경고한 것과 관련해 “이를 행동으로 옮길 경우 비핵화 협상과 한반도 평화정착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