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가 밝았다. 서민들의 새해 바람은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정부도 경제를 살리겠다는 계획과 다짐을 밝힌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0년은 나아졌다,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가득 찰 수 있는 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기업이 바라보는 올해 경제는 그렇게 밝지 못하다. 재계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새해 경제상황이 지난해보다 나아진다는 응답은 5%에 불과하고, 비슷(55%)하거나 소폭 둔화(40%)한다는 답이 많았다. 채용 계획을 밝힌 12개 그룹 중에서 11곳은 지난해와 같은 수준, 1곳은 줄일 계획이며, 늘리겠다는 답은 없었다.
중소기업들도 비관적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945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새해 국내 경제가 ‘좋아질 것(6.3%)’이라는 응답보다 ‘나빠질 것(36.0%)’이라는 응답이 5.7배 많았고 대부분은 ‘비슷할 것(57.7%)’이라고 답했다.
정부는 두 가지 근거로 경제 호전을 기대한다. 첫째, 연초 서명 예정인 미중 무역 1단계 합의로 두 나라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숨통이 트인다고 본다. 둘째,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의 회복이다. 지난해 가격이 60% 이상 하락했던 공급 과잉 현상이 해소되고, 5세대(5G) 이동통신 수요 확대로 메모리를 비롯한 세계 반도체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 예상한다.
그러나 미중 패권 다툼, 중국 국영기업 보조와 지식재산권 보호 등 근본 문제는 미해결 상태이고, 합의 이행을 둘러싼 분쟁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품목의 시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으며, 글로벌 가치사슬의 훼손으로 세계 교역량도 크게 회복되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개발연구원과 한국은행은 새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지난해보다 조금 높은 2.3%로 예상하고,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2.2~2.3%로 보고 있다. 일부 민간 연구기관과 외국 투자은행을 제외하면 경제전문가 대부분은 성장률이 약간 나아진다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기저효과’ 다.
예를 들어 지난해 -10.6% 감소한 수출이 새해에 증가세(3.0%)로 전환된다고 했을 때 절대 수치는 5,610억달러가 된다. 2018년 6,049억달러는 물론 현 정부가 출범한 첫해인 2017년 5,737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결과다.
기업의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새해 상장기업들은 지난해 3·4분기까지 이어지던 영업이익 감소세에서 벗어나 30% 정도의 증가율을 기록할 것로 예상하지만 금액상으로는 2018년 수준으로 복귀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한 해 한 해의 성장률에 연연하기보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길러야 한다. 최근 OECD에서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권고한 구조개혁 내용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빠른 고령화 추세와 낮은 노동생산성을 고려해 노동시장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디지털 기술을 포함한 인력의 개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을 줄이고 혁신 산업에 대한 동력을 불어넣는 것도 주문했다.
새해를 맞는 경제 단체장들의 말도 같은 맥락으로, 규제개혁을 통해 기업의 투자와 생산활동을 늘리도록 해야 한다는 게 요체다. 특히 ‘경제가 정치상황에 휘둘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대한상의 회장의 지적은 선거가 있는 올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기득권의 이해관계로 공유경제가 발이 묶이고, 데이터 3법 같은 신산업 관련법이 국회 처리 과정에서 뒤로 밀리는 일이 더 없어야만 우리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