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어떻게 지내십니까]"정권유지 급급해 최고 권력자에 충성경쟁만 하면 나라 망해"

<송복 서애학회 초대 회장>

문재인 정부, 과거부터 축적해놓은 국가자원·재산 모두 파괴

세계 최고 기술 갖고도 탈원전한다는 건 정상적인 사고아냐

최저임금 인상·주52시간제 도입은 현장 모르는 '紙上兵戰'

임란·독립운동 때도 극심한 분열...보수인사 나라위해 뭉쳐야




“조선은 나라가 아니라 임금에게 충성하는 충신이 많아 망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자의 복심(腹心)을 겨냥한 충성경쟁이 나라를 망치고 있습니다.” 송복(83) 서애학회 초대회장(연세대 명예교수)은 요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조선 시대와 별 차이가 없다고 비판했다. 남 탓하고 이념과 당파에 치우치고, 나라보다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려 하다 보니 나라는 뒷전이라는 것이다. 그는 은퇴 이후 20년 가까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을 연구하며 많은 논문과 책을 펴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애정신에 분열의 역사를 극복하는 힘이 있다고 보고 더욱 깊이 연구하기 위해 학회를 발족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에 대해 들어봤다.

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은 지난해 12월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현장을 모르고 급진적인 정책을 마구 펼치는 지상병전(紙上兵戰)을 하고 있다”며 “이대로 나가다가는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은 지난해 12월24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현장을 모르고 급진적인 정책을 마구 펼치는 지상병전(紙上兵戰)을 하고 있다”며 “이대로 나가다가는 대한민국이 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성형주기자


-북한산이 연구실에서 가까운데 등산도 하시는지.


△지난 2018년까지만 해도 북한산 대남문 꼭대기까지 늘 다녔다. 지난해 1월부터 나이가 많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 둘레길만 다닌다.

-대학 시절 얘기를 듣고 싶은데.

△내가 대학 다닌 50년대는 대학의 중심이 문리과대학이었다. 세계 모든 문리과대학이 그러했듯이 문사철정경사(문학·사학·철학·정치·경제·사회학)가 붙어 있었다. 우리 시대는 정치학 하는 사람이 경제학,사회학 하고 문사철 다 공부했다. 지금 140학점과 달리 160학점을 땄어야 했는데 재미 있는 강의가 많아 168학점, 170학점 따고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서울대 중앙도서관에 책이 100만권 있었다고 했는데 저 책 다 읽고 졸업하겠다고 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나도 의자가 썩어 내려앉는다고 했을 정도로 아침 일찍 가서 저녁 늦게까지 책을 읽고 공부했었다. 그것이 오늘 날까지 지식의 기초가 되고 영양분이 돼 아직도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 오셨는데.

△대학교 4학년 2학기부터 사상계에 나갔다. 사상계는 당시 8만부로 월간지이기는 했지만 동아일보와 판매부수가 비슷할 정도로 지성계를 휩쓸던 잡지였다. 2년 있다가 군에 다녀온 후 잡지사 편집장으로 3년간 일했다. 잘 안돼 서울신문사 외신부로 자리를 옮겨 4년정도 일했다. 당시는 국비유학도 없었고 자기돈으로 외국 유학을 가려고 해도 외환이 없어 보내주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요행히 미국 국무성 산하 동서문화센터(east west center) 시험에 합격해 유학을 가게 됐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가 봐온 문재인 정부는 지금까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권이다. 그전까지는 전 정권이 잘했든 못했든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는, 발전을 축적시키는 정권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지금까지 축적해놓은 모든 자원·재산을 파괴하고 해체시키고 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온 국민이 느끼고 있다. 그동안 10년 단위로 정권이 바뀌어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

-어떤 점이 가장 큰 문제인가.

△제일 간단한 예가 탈원전이다. 원자력발전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당하고도 원전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판단해 다시 원전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도 한국의 원전 기술이 세계적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 기술을 받아들여 발전소를 건설하려고 한다. 해외에서는 원전을 건설하려고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게 정상적인 사고인가.

-무리한 정책집행이 계속되고 있다.

△지상병전(紙上兵戰)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은 현장에서 해야 하는데 종이 위에서 하고 있다는 얘기다. 조선은 전쟁에서 이겨본 일이 없다. 전장의 현장을 본 일도 없는 신하들이 임금 주변에 앉아 이래라저래라 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다고 (조정 대신들이) 잡아서 죽이려고 했다. 지금 현재 정권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지상병전을 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제 도입 등 10년, 20년 후가 될지, 5년 6년 후가 될지도 모를 것을 지금 당장 우리 대에 해야 한다고 해서 다 망쳐놓은 것이다.

-북핵 폐기 문제가 정점을 향해 달리는 것 같다.

△북한이 비핵화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지금까지 모든 핵보유국들이 처음에는 비핵화라는 말을 내세워 핵을 보유하지만 나중에 절대로 비핵화를 안 했다. 특히 북한은 다른 나라에 10만명의 노예노동을 시켜가면서, 그 사람들을 굶겨 죽여가면서 번 돈을 착취해 핵을 만들었다. 경제발전을 시켜준다고 하지만 그럴 경우 김정은이가 망하는데 무엇 때문에 개방하겠는가. 모든 정권은 정권유지가 1차 목표다. 김정은이 사는 방법은 핵을 보유하는 것밖에 없다. 중국이 북핵 폐기와 주한미군 철수 연계를 주장하지만 북한은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도 핵 포기를 꿈에도 생각지 않는다. 그걸 왜 문재인 대통령은 모르는지.

-대통령은 인권변호사 출신이지만 북한의 인권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대통령 재임 때 김정은이에게 잘 보여볼까 하는 것 같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간다. 김정은은 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최고의 간지(간사한 지혜)를 갖고 있다. 김일성·김정일이 그랬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의 연산군이 그랬다. 연산군은 권력을 10년간 잘 유지했다.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자기 반대자는 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10년 동안 사화를 여러 번 일으켜 모두 죽였다. 김일성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에서 올라간 남로당 50만명을 다 죽였다. 중국에서 넘어온 얘들도 몽땅 죽였다. 반대할 수 있는 사람들 전부 죽여버리니 권력이 그대로 유지돼가는 것이다. 조선조 500년도 그렇게 해서 이어져온 것이다.


-문 대통령이 인사에 실패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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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국가에는 인재 풀이 있다. 우리나라도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는 엄청나게 큰 인재 풀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부의 인재 풀은 동네 웅덩이보다도 작다. 풀이 커야 큰 고기가 있는데 동네 웅덩이만 한 것을 갖고 있으니 미꾸라지나 피라미만 골라내 청문회에 앉히는 것이다. 삼성이 가진 인재 풀은 정부가 가진 인재 풀보다 훨씬 크다. 그래서 세계적인 삼성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어떻게 하면 저 세계적인 삼성을 없앨까 해서 민주노총을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세계적인’이라는 말만 나오면 없애려 드는 것이다.

-류성룡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65세에 정년을 맞았는데 건강하고 학문적인 열정도 남아 있어 연구할 거리를 찾았다. 그동안 해오던 서구학문은 제자들이 잘하고 있고 제자들이 안 가졌던 한문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우리 역사를 연구하기로 했다. 내 연구는 정치사회학 중에서도 리더십 연구가 본령이었다. 조선조 500년 동안 사회과학자로서 리더십을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니 1차가 류성룡이었다.

-류성룡은 어떤 사람인가.

△임진왜란 6년7개월 중 5년7개월간 전시수상을 했다. 영의정 겸 도체찰사였다. 도체찰사는 현장에서 군무와 정무를 겸하면서 다스리는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 장군은 녹봉(월급)이 없고 일반 병사는 병기가 없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죽창이든 몽둥이든 도끼든 들고 나와 싸움하자는 게 조선이었다. 그런 나라가 총을 가진 일본을 이길 수 있었겠나. 그 당시 일본 군대는 세계 최강이었다. 바다에서는 이순신, 육지에서는 류성룡이 있어 전쟁을 극복해낸 것이다. 이순신은 원래 육군 출신으로 종6품 정읍현감이었는데 류성룡이 천거해 전라좌수사로 한산도에 앉혔다. 조정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선조를 움직여 무려 7단계나 끌어올렸다. 형안(밝은 눈)이 없으면 이순신을 요충지인 한산도에 앉힌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그것을 선조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조정 대신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들은 자꾸 수군을 없애라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조선조의 사람들은 다 문인들로, 글을 하는 사람들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엄청난 난을 겪었으면 기록을 해야 하는데 기록을 남긴 것은 류성룡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애 전서’를 구해 이를 바탕으로 논문도 여러 개 쓰고 ‘서애 류성룡 위대한 만남’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이 시대에 류성룡으로부터 배울 점은.

△조선조 신하들은 전부 영혼 없는 신하들이었다. 정권유지만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송강 정철이다. 관동별곡·성산별곡·사미인곡 등 수많은 가사를 썼지만 어느 하나 임금을 그리워하지 않는 글이 없다. 어느 하나라도 나라를 생각하는 글도 없다. 임금을 생각해야 벼슬자리도 오고 먹을 것도 준다. 지금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이 다 그렇다. 오로지 나라를 구해야겠다, 나라가 있어야 조정도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류성룡이다. 임금이나 조정을 위해 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했다. 그 이상 더 배울 것이 없다.

-보수통합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임진왜란 때 병기도 없이 세계 최강인 일본 군대와 싸우면서도 우리는 분열됐다. 430년 전 우리나 지금의 우리나 사고에 차이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오래된 미래다’라는 말을 썼다. 상하이 임시정부 때도 독립운동가들이 분열돼 서로 증오했다. 힘을 합쳐도 이길 수 없는데 산산이 분열됐다. 보수통합을 하겠다는 사람들은 정권을 바꾼다는 목적 하나만 두고, 누가 주도하든 통합되고 단합돼야 한다. 그게 나라를 위한 길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펴낸 책들.송복 연세대 명예교수가 펴낸 책들.


◇서애정신이란…

스스로의 책임으로 이념·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自彊하는 자세

“서애정신은 징비(懲毖)의 자세, 평정심을 토대로 이념·당파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을 중시하는 진정성, 또 이 둘을 바탕으로 스스로와 나라의 자강(自彊)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은 지난해 12월2일 한국프레스센터 20층 프레스클럽에서 서애학회를 발족시키면서 특별강연을 했다.

송 초대회장의 강연에 따르면 서애의 징비란 나를 징계하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의미다. 이는 책임이 남이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이고 과거의 잘못도 미래 대비를 위한다는 측면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징비의 자세는 과거와의 싸움에서 비롯된 끊임없던 당쟁·적폐청산을 멈추게 한다. 서애의 진정성은 어느 이념·정파에 속하는 정책이든 나라에 득이 되고 시무(時務)에 맞으면 거리낌 없이 가져다 쓴다는 것이다. 조선은 또 자강, 즉 스스로 힘을 키우지 못하고 끝내 나라마저 빼앗겼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충신의 나라라고 할 만큼 충신이 많아서다. 충신이란 나라가 아니라 오로지 임금,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하는 신하다. 최고 권력자의 입장에서 모든 게 결정되다 보니 나라가 부강할 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전시수상으로 나라를 구한 류성룡이 2등 공신이고 이순신 역시 원균과 동급의 1등 선무공신(宣武功臣)에 그친 것이 이를 증명한다. 최고 권력자가 아니라 스스로와 나라를 위한 자강에 힘써온 서애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화된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송 초대회장은 이러한 서애정신이 분열의 역사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돼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더욱 깊이 파고들어 자자손손 내재화 시키겠다는 의지를 품고 이번 학회를 만들었다. 서애학회는 출발부터 사회과학자를 중심으로 200명가량의 회원이 모여 큰 기대를 받고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연세대 명예교수)은 대한민국 사회학의 토대를 닦은 1세대 학자다. 지난 1937년 부산 김해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사상계와 서울신문 외신부 기자를 했다. 미국 하와이대를 거쳐 서울대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부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왕성한 저술과 신문 칼럼을 통해 한국 보수주의의 사상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2년 정년퇴직 후 20년 가까이 서애 류성룡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성형주기자송복 서애학회 초대회장이 지난해 12월24일 서울 은평구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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