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시드니 50℃ 육박 폭염...잡히지 않는 호주 산불

덴마크보다 넓은 500만㏊ 불타

정부 예비군 3,000명 동원령

남동부는 비상사태 선포했지만

이상고온·가뭄에 피해 더 커질듯

'늑장대응' 모리슨총리 비판 커져

5일(현지시간) 호주 남동부 NSW주의 콘졸라파크에서 한 차량이 산불에 탄 채 방치돼 있다. 이 마을에서만도 주택 50여채가 파괴되고 차량 여러 대가 전소되는 등 호주 전역에서 산불 피해가 커지고 있다.     /콘졸라파크=AP연합뉴스5일(현지시간) 호주 남동부 NSW주의 콘졸라파크에서 한 차량이 산불에 탄 채 방치돼 있다. 이 마을에서만도 주택 50여채가 파괴되고 차량 여러 대가 전소되는 등 호주 전역에서 산불 피해가 커지고 있다. /콘졸라파크=AP연합뉴스






호주 정부가 남동부를 중심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산불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역대 최대 규모의 예비군을 동원하는 등 특단의 조치에 나섰다. 다만 호주 당국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고기온을 갈아치우며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려 산불 피해는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4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산불 진화를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3,000명의 예비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이달 들어 이재민 구조를 위해 군용기나 함정을 투입한 데 이어 산불 대책을 한층 강화한 것이다.


남동부 지역은 비상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지난해 12월 말 남동부 해안 마을인 말라쿠타서 주민과 여행객 4,000여명이 산불에 갇히자 이달 초 뉴사우스웨일스(NSW)주와 빅토리아주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며 남동부 해안을 관광객 금지지역으로 지정했다. 현지 ABC방송은 5일 남동부 휴양지인 캥거루섬에도 산불이 번져 전체 면적 3분의1이 폐허로 변했다고 전했다. 호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남동부 주민 수천명이 해군과 함께 대피하는 사진과 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호주 전역에서 500만㏊ 이상의 땅이 파괴됐다”며 “덴마크보다 넓은 규모”라고 전했다. 통신은 NSW주에서 약 370만㏊, 빅토리아주에서 약 90만㏊가 불에 탔다고 보도했다. 시드니대 연구진에 따르면 NSW주에서만도 약 5억마리의 야생동물들이 화재에 희생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산불은 유례없는 고온현상에 가뭄이 겹치면서 호주 전역으로 퍼졌다. 호주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는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이자 가장 강수량이 적은 해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말 들어 호주의 모든 주가 섭씨 40도를 넘어섰으며 이달 4일에는 시드니 서부 팬리스의 기온이 섭씨 48.9도까지 치솟아 지구상 최고온도 지역으로 기록됐다. 수도 캔버라도 42.9도로 역대 최고기온을 경신했다. 호주 기상청의 한 관계자는 “뇌우·번개 때문에 추가로 산불이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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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회에서는 인명피해 확대를 우려하며 지난 2009년 ‘검은 토요일’의 악몽을 떠올리고 있다. 당시 NSW주 등지에서 자연화재 2,029건이 발생해 173명이 숨졌다. 이번 산불사태로 지난해 9월 말부터 지금까지 총 23명이 사망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인명피해를 우려해 자국민 관광객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산불 장기화로 주요 도시의 식수 공급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됐다. 스튜어트 칸 NSW대 교수는 이번 산불로 발생한 재가 식수공급 시설에 흘러들 수 있다며 시드니 인근 주요 식수와 취수시설의 오염 가능성을 지적했다. 특히 100㎜ 이상의 비가 내릴 경우 재가 호수 등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에 ‘늑장대응’을 했다는 비난에 휩싸인 모리슨 총리는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렸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산불이 확산되는 와중에도 하와이에서 휴가를 보낸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셰인 피츠시몬스 NSW주 산불방재청장은 모리슨 총리가 내린 예비군 동원령과 관련해 “언론을 통해서야 소식을 접했다”면서 “실망스럽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지적했다.

야권은 모리슨 총리의 친(親)석탄정책이 화를 키웠다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보수 성향의 모리슨 내각은 석탄산업의 이권을 대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호주 석탄산업이 전 세계 석탄 수출의 3분의1을 차지하는데다 핵심 경합 선거구에서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최근 모리슨 총리는 석탄산업을 감축해야 한다는 야권의 요구를 “무모하다”며 일축했다. 미 CNN은 “주요 도시와 마을이 폐허로 변하면서 호주의 생활방식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모리슨 총리가 이번 화재로 곤경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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