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위기의 석유강국

박효정 산업부




“중국의 정제시설 증설 속도가 심상치 않습니다. 마치 7~8년 전 철강산업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처음 열린 ‘석유 콘퍼런스’에서 김효석 대한석유협회장은 석유산업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관계자는 “그만큼 우리 석유산업이 전례 없는 위기에 처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정유사들도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폐쇄되거나 구조조정을 한 국내외 철강사들과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정유사 이익의 핵심지표인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0.2달러를 기록했다. 월 평균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은 2000년 집계 이후 처음이다. 통상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배럴당 4달러를 손익분기점(BEP)으로 본다. 지금은 정제시설을 가동할수록 손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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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까지 고조되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약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2월 인도분). 단기적으로는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 재고의 가치가 올라가 이득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위기가 지속해 원유 공식판매가격(OSP)이 인상되면 정유사들의 부담은 커진다.

정유사들은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성 면에서 원유 생산지인 중동과 동남아 시장에 모두 가까운 싱가포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싱가포르까지 운임은 배럴당 80센트, 한국까지 운임은 배럴당 1달러66센트다. 화학 부문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 수익을 다변화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

아쉬운 점은 산업을 밀어주지도 끌어주지도 않는 정부의 대응이다. 우리나라는 비산유국 중 유일하게 원유에 수입관세를 물린다. 투자 인센티브는 경쟁국에 비해 미미하고 밀려오는 환경규제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다. 우리나라는 석유산업이 수출의 12.5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석유 강국’이다. 석유 강국에 걸맞은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돌아봐야 할 때다.

박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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