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를 받는 임종헌(61·사법연수원 16기)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 재판이 재판부 기피 신청으로 7개월째 멈춘 가운데 대법원이 오는 2월 인사 때까지 판단을 아예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논란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이유도 없이 가혹하게 구속기간만 늘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 전 차장 재판부 기피 신청을 심리하는 대법원 제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아직 이에 대한 판단을 내놓지 않고 있다. 법조인 대다수는 임 전 차장이 기피 대상으로 지목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6부 윤종섭 부장판사가 다음달 6일 발표 예정인 법원 인사 대상인 만큼 그때까지 대법원이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 재판부 재판장이 인사를 계기로 다른 사람으로 변경될 경우 임 전 차장의 기피 신청은 자동으로 효력을 잃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 전 차장이 1심도 못 끝낸 상황에서 벌써 1년3개월째 구속 상태에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 임 전 차장이 기피 신청을 제기한 후부터의 수감기간은 구속기간에 산입되지도 않는다. 임 전 차장이 추후 어떤 법원의 판단을 받더라도 아무 이유 없이 손해 봐야 하는 수감기간이다. 기피 신청 결과까지 석방될 수도 없을뿐더러 결과가 설사 나오더라도 추가 발부된 구속영장 기간을 채워야 한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관계자 가운데 현재까지도 수감된 사람은 가장 먼저 구속된 임 전 차장이 유일하다.
지난 2018년 10월27일 구속된 임 전 차장은 같은 해 11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이후 1심 재판부는 지난해 5월13일 임 전 차장에 대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그러자 임 전 차장 측은 지난해 6월5일 A4용지 106쪽 분량의 재판부 기피 사유서를 제출했다. 윤 부장판사가 편파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해당 신청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지난해 9월 재판장 기피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사건 처리에 처음부터 미온적으로 대응했다. 처음 사건 심리를 맡은 대법관이 개인적인 관계 등을 이유로 회피 신청을 내더니 재배당으로 주심을 맡은 민유숙 대법관은 벌써 4개월째 사건을 처리하지 않았다. 통상적인 경우 구속 피고인은 인권 문제 때문에 일주일~한 달이면 결과를 내지만 임 전 차장의 사건은 이례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 보류가 대법관들이 법원 외부와 내부 여론을 신경 쓴 결과라고 지적했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난처한 상황을 맞느니 차라리 정기 인사로 사건이 자연 해소되기만을 기다리는 형국이라는 진단이다.
고위 법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설마 2월 인사까지 뭉개겠나 했는데 대법관들이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너무 잔인하게 굴고 있다”며 “장담컨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도 현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내에 대법관들이 자기들 손으로 결코 확정판결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