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을 쏴 빌딩 숲을 자유자재로 활개치는 ‘스파이더맨’이 물속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거미줄의 끈끈한 기능이 분해돼 접착력이 약해져 아무 힘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홍합을 활용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거친 파도와 태풍에도 끄떡없는 홍합은 바위에서 억지로 떼어 내면 바위 표면이 떨어져 나올 정도로 접착력이 강하다. 강력한 접착 단백질을 분비해 ‘족사’라 불리는 질긴 섬유를 만들어 바위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차형준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한정우 화학공학과 교수, 신민철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과 김낙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박사로 이뤄진 공동연구팀은 홍합이 분비하는 접착 단백질을 분석해 수중에서 도파(Dopa)와 라이신(lysine)이 시너지를 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15일 밝혔다.
지금까지는 수중 접착제를 만들 때 주로 도파 분자 모양을 모방했으나 표면 접착력과 접착제 분자들 사이의 응집력을 조절하기 어려워 홍합과 비슷한 접착 효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라이신 분자도 수중 접착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연구팀이 확인해 홍합의 강력한 접착력의 비밀이 풀리게 됐다.
연구팀은 홍합의 표면접착 단백질인 fp-3F가 수중접착을 가능하게 하는 도파와 양전하를 띄는 라이신 분자를 다량 함유하는 것에 주목하고 면밀히 관찰했다. 그 결과 도파와 라이신의 거리가 각각 다른 단순한 펩타이드들을 합성한 뒤 도파와 라이신의 거리에 따라 표면 접착력과 응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두 분자가 함께 이웃할 때는 라이신이 수중 접착을 방해하는 접착 계면의 물 분자와 도파 주위의 물 분자를 끌어당겨 수중 표면접착력이 증가했다. 반면 도파와 라이신이 붙어 있을 때는 라이신이 철 이온이 도파에 접근하는 것을 방해해 응집력이 떨어졌다.
차 교수는 “도파와 라이신 분자의 시너지에 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며 “홍합 접착 단백질이 어떻게 설계됐는지도 확인해 다른 자연 접착 단백질 연구에도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저널오브콜로이드앤드인터페이스사이언스’에 게재됐다. /고광본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