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장사 정기주주총회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 재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도한 정부의 개입이 기업 경영활동 위축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감사·감사위원 선임 안건에 대한 최대주주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3%룰이 지난 1962년 상법 제정 당시 도입돼 58년째 유지되는 가운데 2017년 말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 제도가 폐지되자 지난해 정기주총 시즌에 감사·감사위원 선임 대란이 현실화됐다. 올해는 2월에 시행될 예정인 상법·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영향도 더해진다. 특히 최근 강화되는 정부의 주총 정책은 대기업은 물론 상대적으로 여력이 적은 코스닥 상장사 등에 더욱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 따르면 3%룰 적용에 따라 정기주총에서 감사·감사위원 등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 수는 2018년 76개에서 2019년 188개로 급증했다. 지난해 상반기 상장협은 올해 정기주총에서 안건이 부결될 것으로 보이는 상장사 수를 238개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대폭 증가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상장협 관계자는 “당시 최대한 보수적으로 집계했고 2018~2019년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한 기업은 올해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지만 238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2017년 말 섀도보팅 시행 전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한 기업들도 올해부터 임기 만료가 이어지기 때문에 현행 제도가 유지되는 한 파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외이사 임기를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하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으로 올해 정기주총에서 사외이사가 교체될 기업은 전체 12월 결산 상장사 2,003개 중 약 3분의1에 해당하는 566개로 추산된다. 당초 법무부는 사외이사 임기제한 시행을 1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시행 강행을 결정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재계의 의견을 듣고 검토한 결과 상장사의 부담이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도입 취지인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를 위해 임기 제한이 필요하고 임기 만료된 사외이사를 대체할 다른 후보를 구하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전형적인 탁상공론 규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동종업계 재직 경험이 있어야 사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만 그런 분이 많지 않고 동종업계의 경쟁기업으로 옮기기도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경영 개입 확대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시행으로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가의 상장사 지분 5% 이상 보유에 따른 보고 의무(5%룰)가 완화되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상장사의 이사회·지배구조·배당 등에 적용되는 정관변경 요구도 경영권 영향 목적 활동으로 분류돼 5일 내 세부 내용을 공시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시 의무가 기관 투자가의 적극적 주주 활동을 제약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시행령 개정안에서는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이 같은 활동이 경영권 영향 목적 활동에서 제외돼 한 달 내 주요 내용만 공시하는 약식보고가 허용됐다. 재계 및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을 통해 정부·시민단체·정치권 등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여지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참여연대를 비롯한 일부 단체들은 최근 삼성물산·삼성중공업·효성·대림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에 이어 지난해 말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을 도입한 국민연금은 올해 정기주총에서 적극적 주주권 행사가 예상된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기준 313개 상장사에서 의결권 행사 기준인 5%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기업에서는 2대 주주 지위에 올라 있다. 포스코·KT·KT&G를 비롯해 신한지주·KB금융 등 주요 금융사와 네이버에서는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이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금운용위원장을 맡은 정부 산하 기관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문제라는 의견이 나온다. 상장협은 지난해 말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 도입에 대해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지배구조부터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반박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은 재원이 세금이기 때문에 일반 기관투자가와 성격이 다르며, 덩치가 크고 정부 입김이 강한 기관이 강하게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정부의 주총 규제 강화가 결국 코스닥 상장사 등 중소기업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코스닥 상장사 임원은 “대기업은 3%룰이 있어도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큰 문제가 없지만 코스닥 상장사 같은 중소기업은 그렇지 않다”면서 “내년 1월로 시행이 연기된 주총 전 사업·감사보고서 공개도 중소기업에 부담이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감사 일정이 지연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주총 전 감사보고서 작성을 완료해 공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업·감사보고서 공개 시점을 주총 전인 주총 소집 통지 시로 앞당기는 방안은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시행이 연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