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을 얻는 공천을 하느냐, 아니면 오히려 잃는 공천을 하느냐는 선거의 승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다. 1980~1990년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각각 이끌던 정당에서 무소불위의 공천권을 행사하던 ‘3김 시대’가 지난 2000년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국민 정서에 반하는 공천을 단행한 정당이 이긴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제16대 총선 이후 공천사(史)를 살펴보면 특정 정당이 공천에 말썽을 빚고도 승리한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당시에는 상대 당 역시 공천 과정에서 경중을 가리기 어려운 큰 문제가 발생했다. 제21대 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을 89일 앞두고 여야가 표심을 좇는 공천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여야 모두 화두는 ‘혁신’=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부터 현역 의원은 전원 경선을 거치도록 했다. 또 경선에서 ‘정치 신인’에게는 최대 20%, 여성·청년을 비롯한 정치 소외계층 등에게는 최대 25%의 가산점을 부여한다. 이에 뒤질세라 자유한국당은 모든 정치 신인에게 기본적으로 20%의 가점을 주기로 했다. 심지어 만 34세 이하의 청년 신인에게는 무려 50%의 가산점을 준다. 당이 혁신을 위해 경선 룰을 혁신한 것으로 풀이된다. 통합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은 아직 공천에 대해 말하기는 이르다면서도 ‘혁신공천’ 원칙에는 뜻을 모으고 있다. 이처럼 여야가 공히 혁신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은 묵은 조직을 바꿔 새롭게 하는 것이 민심에 부합한다는 사실이 이미 수차례 검증됐기 때문이다. 실제 16대·17대 총선 경선에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의미 있는 공천 개혁을 이뤄냈고 선거를 통해 각각 1당이 됐다.
◇20·30·50% ‘숫자 대결’=정치 신인을 위한 ‘자리’를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현역 의원의 출마 기회는 줄일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다가오는 총선에 출마하지 않는 의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치 신인이 가질 수 있는 기회는 늘어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높은 ‘물갈이’ 목표치를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의원 다면평가를 통해 ‘하위 20%’의 점수를 받은 의원이 경선에 참여할 경우 20%의 감점을 부여하기로 했다. 인위적인 컷오프(공천배제)는 없다고 했지만 20% 감점은 컷오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한국당은 아예 30% 컷오프, 50% 물갈이 목표를 공식화하고 있다. 새누리당(한국당 전신)은 19대 총선에서 역대 최고치인 46.6%의 현역 의원 교체율로 152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물론 물갈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열은 정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민심 담는 툴 개발 시급=민주당과 한국당은 모두 경선에서 권리당원 투표와 일반 여론조사 결과를 각각 50%씩 반영해 총선 출마자를 선출한다. 문제는 ‘부정’ 권리당원 의혹과 여론조사의 ‘부정확성’ 논란이 경선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런 의혹과 논란은 선거 승패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19대 총선에서는 민주통합당의 공천 파동 등으로 무당층이 대거 새누리당을 지지하면서 새누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민주통합당은 당시 야권 통합공천 과정에서 경선 여론조사 조작 의혹으로 공천에 잡음이 일면서 역전을 허용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민주연구원장을 지낸 한 인사는 “현재의 경선제도는 인지도가 높은 후보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측면이 있다. 권리당원 투표와 여론조사 결과가 정확한 지역주민의 민심이 아닐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유튜브 등을 통해 후보 간 토론을 생중계하고 권리당원과 주민이 그 토론을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