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은 검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과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이 존중되어야 하듯이 장관과 대통령 인사권도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인사권은 대통령과 장관에 속해 있다고 강조했다. 정권을 향한 검찰의 수사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 인사를 통해 사실상 수사가 중단되거나 방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대통령의 권한’으로 일축한 것이다. 다음 주로 예정된 중간간부 인사에서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거침없는 ‘물갈이’가 재연될지 관심이 쏠린다.
법조계는 ‘추미애발(發)’ 인사폭풍이 이번 차·부장급 인사에서도 반복될 것으로 전망한다. 다만 차·부장급은 수사를 실제로 이끌고 지휘하는 실무자에 가까운 만큼 그 후폭풍은 고위간부 인사보다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는 전언이다. 중앙지검 1·2·3차장검사를 비롯해 일부 부장검사들이 대폭 교체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이끌었던 송경호(사법연수원 29기) 3차장검사는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를 맡고 있는 신봉수(29기)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와 함께 교체 1순위로 거론된다. 송 차장검사는 지난 16일 서울중앙지검 확대간부회의에서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은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 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된다”며 윤 총장 취임사를 인용했다. 이성윤(23기) 서울중앙지검장 면전에다 직접수사 부서 축소를 반대하고 나선 셈이다.
인사가 ‘윤석열 사단 학살 시즌2’ 혹은 ‘친정권 줄세우기’ 식으로 진행되면 검사들의 반발 역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3일 정희도 대검찰청 감찰2과장은 대검 내부망 게시판 ‘이프로스’에 글을 올려 “특정사건 관련 수사담당자를 찍어내는 등의 불공정한 인사는 ‘정치검사 시즌2’를 양산하고 시계바늘을 되돌려 다시 검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 수 있다”고 비판했다. 검사들의 분위기도 심상찮다. 이번 정부의 검찰개혁 핵심인 검경수사권 조정을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규정하며 사표를 던진 김웅 법무연수원 교수의 이프로스 글에는 검찰 역사상 최다인 600여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검사들이 들끓자 법무부도 한발 물러섰다. 지난 17일 법무부는 형사·공판부로 전환할 예정인 직접수사 부서 13곳 가운데 2곳에 대해 전담 수사기능을 유지하고 명칭에 이를 반영하는 직제개편안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기존 폐지대상 중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가 공직범죄형사부로, 서울서부지검 식품의약조사부가 식품의약형사부로 바뀌고 기존 사건을 전담하게 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축소 대상인 직접수사 부서 13개 중 2개에 대해 기존 안과 같이 형사부로 전환하되 전담수사 기능을 유지하고 명칭에도 반영하는 등 일부를 수정 보완한 것으로, 직접수사 부서를 되살리기로 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물러섰다’는 뉘앙스를 피하려는 동시에 대검이 기습 발표된 직제개편안에 대해 제출한 사실상 ‘전면 반대’ 의견을 반영한 결과로 풀이된다.
서초동은 다음 주 인사를 앞두고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중간간부 인사를 통해 검찰에 대한 현 정부의 기조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단체항명 등 소위 말하는 ‘검란(檢亂)’이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는 20일 오후 법무부는 중간간부 승진·전보 인사를 위한 검찰인사위원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검찰 ‘힘 빼기’와 직결되는 직제개편도 다음 주 확정된다. 법무부는 오는 21일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4곳 중 2곳, 공공수사부 3곳 중 1곳 등 검찰 직접수사 부서 13곳을 형사·공판부로 전환하는 내용의 ‘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 상정할 방침이다. 인사발령은 직제개편안이 확정된 이후 발표될 전망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박균택(21기) 법무연수원장, 김우현(22기) 수원고검장, 이영주(22기) 사법연수원 부원장이 잇따라 사직하는 등 총 7명의 검사가 조직을 떠났다. 후속 간부 인사를 전후해 중간간부급에서도 사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