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이 검찰 불기소 처분을 다시 살펴보는 재정신청 전담 합의부 1~2곳을 신설하기로 했다. 최근 검찰 권한의 비대화를 둘러싸고 여론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 법원까지 검찰의 기소독점권에 대한 견제에 가세한 모양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은 다음달 인사 이후 사무 분담 과정에서 재정신청 전담부를 신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창보 서울고등법원장은 지난해 업무보고에서 재정신청 전담부 신설 방안을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알린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 법원장은 “재정신청 사건은 서면심리 특성상 업무 부담은 크지 않으나 민원인 상대 등으로 판사와 직원의 피로도는 크다”며 전담부가 최소 1.5개 이상 필요하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고법은 22일 전체 판사회의에서 관련 의견을 수렴한 뒤 구체적으로 어떻게 규정을 마련해 전담부를 신설할지 확정할 예정이다.
복수의 법원 관계자는 “김 법원장이 취임한 지난해 2월부터 재정신청 전담부 설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며 “전체 회의는 이미 신설이 어느 정도 결정된 상황에서 판사들의 의견만 들어보는 과정”이라고 귀띔했다.
서울고법이 이렇게 전담부를 설치하게 된 것은 재정신청 인용률이 고작 0%대에 머물면서 충실한 심리 없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된다는 지적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15년 국정감사 때부터 지난해까지 이병석 새누리당(자유한국당 전신) 의원을 필두로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오신환 새로운보수당(전 바른미래당) 의원, 송기헌·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를 막론하고 재정신청 심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실제 최근 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해 공소제기 결정을 내린 비율은 0.5%를 밑돈다.
재정신청 제도는 검찰의 부당한 불기소 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1954년 도입됐다. 검찰 불기소 처분에 불복한 고소·고발인이 전국 고등법원에 공소제기를 신청하는 제도다.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검사는 반드시 공소를 제기해야 해 강력한 견제 수단으로 꼽힌다.
서울고법의 전담부 신설 결정에는 지난해 3월 수원고등법원 출범과 서울고법 인천 원외재판부 설치가 힘을 보탰다. 2심 사건 수가 해당 법원으로 분산되면서 그간 걸림돌로 지목됐던 인력 문제에 여유가 생긴 것이다. 현재 재정신청 재판은 서울고법 10개 행정부와 1개 민사항고부가 나눠 심리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이 5년 전부터 제기한 문제에 대해 법원이 하필 검찰개혁으로 여론이 양분된 현시점에 화답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은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권력 견제라는 청와대와 법무부의 정책 방향에 독립된 사법부까지 협조하는 양상이 됐기 때문이다. 사법부는 최근 이탄희 전 판사와 이수진·최기상·장동혁 전 부장판사 등이 잇따라 여당 쪽 정치에 투신하거나 이를 검토하면서 국민 신뢰에 다시 한번 흠집이 가는 분위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서울고법의 전담부 설치에 대법원은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으며 최근 검찰개혁 등과 관련한 의심은 ‘오비이락’”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