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11월,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다낭에서 국가 차원의 스타트업 축제 ‘테크페스트’를 열고 각 분야의 스타트업 창업자 400명을 불러모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창업과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직접 듣고 모든 정부 부처에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조치를 내놓도록 독려했다. 권위주의 문화가 아직 강한 동남아 지역에서 국가 지도자가 스타트업 창업자와 직접 대화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베트남 최대 운용사인 비나캐피털벤처스의 쩐낫칸 파트너는 “베트남은 물론 동남아에서도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베트남 정부의 스타트업 생태계 지원 노력에 힘입어 2015~2019년 베트남 스타트업이 유치한 평균 투자 규모는 연평균 22%씩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정부가 스타트업 육성을 국가 경제성장을 위한 최우선 전략으로 삼은 것은 2016년부터다. 푹 총리는 2016년을 ‘국가 스타트업의 해’로 선포하고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지원을 위한 국가 프로그램 ‘프로젝트 844’를 도입했다. 별도법을 마련해 스타트업에 대한 기술 이전, 세금 감면, 대출 우대 등 전방위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핀테크를 포함해 베트남에서 창업한 스타트업 수는 3,000여개로 2015년 대비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은행 계좌조차 없는 인구가 70%에 달할 만큼 척박한 금융 환경에서 모모·잘로페이와 같은 대형 전자지갑·디지털 결제 핀테크가 급성장한 배경이다.
스타트업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정작 현장에서는 ‘혁신을 위한 진정한 지원은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최고조에 이른 사회적 갈등 끝에 ‘불법’ 낙인이 찍힌 승차공유 스타트업 ‘타다’와 국회 통과까지 1년 넘게 걸린 ‘데이터 3법’이 증거로 꼽힌다. 무엇이 문제일까.
베트남 과학기술부의 고문위원이자 정부 산하 스타트업 지원기관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의 수장인 응우옌피반 의장은 16일(현지시간) 베트남 호찌민에서 본지와 만나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역할은 스타트업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 민간 부문을 지원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책 수립·시행에 성공한 기업가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중요한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반 의장 역시 호주·동아시아·동유럽·중동 등 전 세계를 무대로 브랜딩·프랜차이즈 전략을 컨설팅한 기업가 출신으로 베트남 정부의 요청을 받아 과학기술부 고문직을 수락했다. 그는 “정부는 겸손해야 한다.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민간과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정부는 고용과 같은 작은 목표에 매몰되지 말고 국가 전체적인 이익과 산업 구조조정의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로운 서비스가 출현할 때 필연적인 사회적 갈등을 선제적으로 조율하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베트남 역시 차량호출 서비스 ‘그랩’이 들어오자 택시업계가 그랩을 고소하면서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다. 베트남 정부는 별도 과세 체계를 마련해 그랩에 택시회사보다 더 많은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일단 봉합했다. 반 의장은 “문제가 일단 발생한 뒤 하나씩 해결하려고 하면 불가능하다”며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는 미래를 먼저 내다보고 준비하면서 급변하는 사회에 국민들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호찌민=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