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원자력품질보증자격인증(KEPIC·케픽)’을 스스로 반납하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정책에 집착하면서 당분간 원전시장이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굳이 비용을 들여가며 인증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서다. 부산의 한 원전부품 업체 사장은 서울경제에 “신고리원전 5·6호기 사업 말고는 신규 물량이 없어 납품 기회가 사라지다 보니 케픽 인증을 포기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며 “원전 매출도 없는데 3년마다 유지비용만 1억원 이상 드는 케픽 인증을 보유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3면
실제 본지가 22일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대한전기협회의 케픽 인증 현황을 봐도 최근 3년간 케픽 인증을 위한 심사건수나 보유업체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5년에는 케픽 인증을 받으려는 신규 심사건수가 32건에 달했지만 2017년 13건으로 줄어든 데 이어 지난해에는 10건으로 감소했다. 케픽 인증 보유기업 역시 2015년 222곳에서 2017년 210곳으로 감소하더니 지난해에는 186곳으로 16%나 급감했다. 이 가운데 중소기업은 같은 기간 145개에서 121개로 뚝 떨어졌다. 더구나 케픽 인증 갱신기간이 평균 3년인 점을 감안하면 올해 갱신하지 않고 포기하는 기업들이 급증할 수 있다.
원전시장이 죽으면서 납품처마저 줄어들자 원전 부품을 더는 납품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기업들이 케픽 인증을 내던지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탈원전정책 집착이 두산중공업 등 대기업은 물론 원전상태계의 모세혈관에 해당하는 납품 업체마저 고사시키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성풍현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국내 원전부품 조달 생태계가 망가져 해외에서 공급을 받는다면 납기가 길어지는 것은 물론 비용·안전성 등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원전생태계는 한번 망가지면 복원이 어려운 만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등 정책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