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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귀성길 짜증과 조급증 내쫓는 법

텔레비전에서는 고향으로 가는 기나긴 차량 행렬을 비추었다. 그 역시 그 행렬에 섞여 있을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 빨리 가면서 아낀 시간을, 명절에 고향 가는 느릿하고 기나긴 행렬에 섞여 길에 돌려주는 것 같다고. 그래서 명절에 고향에 가는 거라고. 속절없이 길에 시간을 빼앗기면서도 그는 행복할 것이다. (성석제,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2003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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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시인이자 가수인 ‘나’에게 어느 날 대뜸 욕설 섞인 전화가 걸려온다. 왜 통 고향에 내려오지 않느냐는 것이다. 가족이나 친척도 아니고 기억도 잘 안 나는 고향친구의 타박이 어이없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만 하는 남자의 항의에 ‘나’는 점점 귀를 기울인다. 그러나 고향을 외면했던 데 대한 참회와 함께 점점 더 깊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라. 내 친구가 아니더라는 것이다. 단편소설보다 더 짧은 길이의 손바닥소설에 인생의 희로애락과 반전을 가뿐하게 새겨넣는 성석제의 소설 중 한 편이다. 나는 명절 무렵이면 웃음과 함께 이 소설을 떠올린다.


‘빨리빨리’의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막히는 명절의 고속도로는 죽을 맛이다. 자동차 안에 갇혀 씩씩거리고, 한국의 명절문화를 증오하고, 타인의 운전습관에 분노하고, 오래 타서 덜덜거리는 자동차에 자괴감을 느끼는 귀성길은 더욱 막막하게 느껴질 것이다. 이번 설에도 길은 붐빌 것이고 나는 느릴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짜증과 조급증이 치솟거든 평소 아등바등 살며 모아둔 시간을 ‘길에 돌려주는 것’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느린 귀성길은 길에다 시간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길 위에서 마땅히 보냈어야 할 어떤 시간을 조금씩 돌려주며 가장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곳으로 돌아가는 중인 것이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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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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