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는 최고 흥행을 기록한 ‘내부자들’의 우민호(사진) 감독이 ‘남산의 부장들’로 올해 설 극장 대전의 승자가 됐다. 지난 22일 개봉한 이후 320만 명을 동원하며 ‘히트맨’ ‘미스터 주 : 사라진 VIP’ ‘해치지 않아’ 등을 재치고 압도적인 스코어를 기록한 것이다. 10·26이라는 다소 민감한 현대사를 소재로 한 탓에 우려도 있었지만 팩트에 기반한 원작인 동명의 논픽션 소설의 정신을 그대로 살려낸 데다 누아르와 첩보물을 혼합한 스타일리시한 연출 이병헌,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믿고 보는 배우들’의 명연기가 관객들을 사로잡은 것이 흥행의 이유로 풀이된다.
개봉 첫날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우 감독에게 오프닝 스코어가 좋다고 운을 떼자 “소재가 예민해서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며 “편견을 갖고 영화를 볼 관객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편견을 걷어내고 보면 이 영화가 진짜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박통의 장기 집권 18년을 다 다룰 수는 없었고 그 마지막 순간, 그 지점을 파헤쳐서 알리고 싶었다”며 “등장인물들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지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18년째 정권을 쥐고 있던 박통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아무도 믿지 못하고 2인자들에게 충성경쟁을 유도했는데, 이는 1인자 역시 자신이 권력의 끝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불안에 사로 잡힌 심정이었을 것이라는 게 우 감독의 설명이다. 18년을 집권하는 동안 어느 순간에는 내려오고 싶었지만 폭주하는 기관차에서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는 혹은 내려고 싶지 않은 권력에 중독된 박통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멈출 줄 모르는 게 아마도 권력의 속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2인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박통을 암살한 중앙정보부 부장 김규평(이병헌)이나 박통에게 배신을 당한 전 중정 부장 박용각이나 박통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하는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나 권력을 향한 충성과 암투라는 잔혹사는 어쩌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권력욕이 만들어낸 풍경일 것이다.
‘내부자들’을 비롯해 최근작인 ‘마약왕’까지 우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유난히 사회성이 짙다. 혹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영화를 하는 목적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런데 우 감독은 오히려 영화적인 것을 좋아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사건을 영화적으로 찍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커다란 사건인데 영화가 사건 안에 갖혀 있길 바라지 않고 오히려 확장성을 가지고 다채롭게 바라보기를 바랐기 때문에 누아르 색채를 영화적으로 세거 넣은 것이다. 다 아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등장인물들의 실명을 쓰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우 감독의 말대로 ‘남산의 부장들’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적 상상력과 영화적 표현력이 스타일리시하게 어우러진 작품이다. 10·26 사건과 박 부장이 미국 하원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 정권의 실체를 폭로한 시점은 2년 정도의 시차를 두지만, 영화에서는 40일 전 상황으로 좁혀졌다. 누아르와 첩보물이라는 장르의 재미를 더하기 위해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것으로 보인다. 또 김규평 역시 박 부장과 똑같은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을 대사와 장면으로 계속해서 관객에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박 부장의 “각하는 2인자를 안 살려놔”라는 대사를 비롯해 박 부장이 최후의 순간에 오른쪽 신발이 없고, 김 부장 역시 암살 이후 다음 행선지로 가는 도 중 왼쪽 신발이 없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이 데칼코마니처럼 겹치는 것.
배우들의 명연기 역시 작품의 몰입도를 높인다. 이병헌을 비롯해 이성민,곽도원, 이희준은 실존 인물을 그대로를 재현하는 한편 배우 나름 재해석한 것이다. “이병헌과 이성민은 아마도 처음 보는 그림일 것이다. 이성민은 절대권력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둘의 앙상블이 너무 좋아서 관객들이 놀랄 것이다. 이성민 캐스팅이 의아하겠지만 외모가 기준이 아니었다. 닮음을 연기하는 배우가 필요했다.” 그는 곽도원은 ‘곡성’을 보고 팬이 돼서 꼭 캐스팅해보고 싶었다고 했으며, 이희준은 층이 매우 얇고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 종교에 가까운 단순한 인물을 아주 잘 연기해줬다.
한국의 감독과 드라마 작가들이 넷플릭스 등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우 감독의 스타일은 드라마에도 가까워 혹시 제안이 없냐고 묻자 “예전에는 있었는데 그때는 하고 싶지 않아서 거절했다”며 “언젠가는 영화에서는 하지 못하는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로 남자들이 이야기를 해온 그는 앞으로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다고 한다. “원래 입봉작을 여자의 복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남산의 부장들’ 이후에는 좀 쉬다가 작품을 구상해 볼 생각이다.” 사진제공=쇼박스(086980)